한상덕의 농담(農談)<25>

최근 도시민들의 귀농귀촌이 활발하다. 이들 중에는 성공적인 농촌정착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이도 있고,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도 있다. 본지는 재밌는 한상덕 씨의 생생한 귀촌일기 연재를 통해 후배 귀농귀촌인들의 시행착오를 덜어줄 지름길을 알려주고자 한다.

▲ 가을 호박꽃.

장마와 쏟아지는 햇빛을 최대한 활용해 무서울 정도로 성장해가던 초목이 언제 그랬었냐는듯 피골이 상접한 모양새다. 뼈만 남은 나무가 이파리를 많이 거느리면 부러질 수밖에 없을 테지. 식물의 생존본능은 동물만큼 영리하다. 아니, 늙은 나이에도 가진 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인간보다 영리하다.

귀농생활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도 된다. 책을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고 ‘혼술’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물론 농사일은 나 아니면 누구도 나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잡초를 뽑아도 내가 뽑아야하고 물을 주어도 내가 주어야한다. 농사와 자연의 결정적인 차이는 질서와 무질서의 차이일 것이다. 무질서한 자연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자연도태로 걸러지면서 저절로 질서가 잡혔고, 농사는 인위적으로 질서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서로 얽히거나 햇빛을 받지 못하거나 병충해의 제물이 되어 말라죽는다.

퇴직한 남자에게도 같은 인위적인 질서가 필요할 것이다. 무질서하게 방치하면 궁핍하고 안으로만 기어들고 세상과의 불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배우 박보검인들 퇴직하면 비슷한 신세가 되지 않겠나.  
농촌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밤에는 산 너머로 사라진 은하수가 바다를 만드는 걸 볼 수 있다. 가을을 끝낸 들판에 서서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소리쳐 부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사형수를 지켜봤던 교도관의 말에 의하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형수나 비정상적이고 격하게 행동하는 사형수나 ‘도긴개긴’이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차라리 죽음을 앞두고 발광하는 사형수가 훨씬 더 인간적인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은퇴한 남자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백수 과로사’ 어쩌고 말해가며 바쁜 척하는 사람이나, 하는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사람이나 ‘도긴개긴’으로 보인다. 과장되거나 위축되거나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농촌은 퇴직이 없는 곳이다. 그리고 ‘혼술혼밥’이 지금처럼 유행하기 이전부터 하나의 생활이었다. 귀농자 대부분이 초기에 거쳐 가는 절차 같은 것이기도 하다. 드라마 ‘혼술남녀’처럼 최고급 안주를 놓고 이어폰을 끼고 먹지는 못하지만 된장 찍은 풋고추와 막걸리 한 모금이면 새들이 이어폰 역할을 대신해주는 곳이 농촌이다. 옆에 있는 아내가 아니기에 옆에 없는 아내를 더욱 간절하게 사랑하게 된다. 외롭지만, 외로움은 살아있음의 증거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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