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이웃에 살면서 친하게 지냈던 부부가 새집을 지었단다. 장소를 물어보니 하늘이 높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라고 말했다. 진짜? 싶었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설마 그런 곳이 있으려고...경험담을 들어보니 과장은 아닌 듯하고 나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집을 짓는 동안 두 사람은 평생 안 해도 될 경험까지 했다고 했다. 부인은 암 수술까지 했고 인부들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고 내 돈 들여 내 집을 짓는데도 설계도대로 마무리가 안 되더라고 했다.

그런데 호수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게 얼음처럼 녹더란다. 하지만 부부는 합창하듯 “내 생애 다시는 집 같은 건 안 짓는다.”라고 말했다. 집을 지어보니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다 챙겨야 했고, 아파트를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이 고맙게 느껴졌다고 했다.
식구들이 빠져나간 시간에 아파트는 혼자임을 일깨워주는 큰 거울 같다. 숨으려고 해도 숨을 곳이 없다. 네모난 거실 벽면 중앙에는 TV가 걸려있고, 소파가 있고 항상 제 자리에 있는 물건들이 편리할 때도 있지만 고인 물처럼 권태로움이 있다.

그럴 때 내가 찾는 곳은 벤치가 있는 아파트공원 쉼터다. 산과 연결된 그곳엔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또르르 똑똑! 하고 도토리들이 굴러 와 발밑에서 멈춘다. 굴참나무에선 청설모가 나무 사이로 옮겨 다니고 땅에선 까치들이 모이를 쪼느라 바쁘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풍경이 좋다. 하늘에 구름은 같은 구름이라도 아파트 거실에서 봤던 구름과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니. 이런 자연의 변화와 살아있는 느낌 때문에 힘들어도 집을 짓고 이사하는 거겠지. 그 부부도.

아파트에서 거실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농촌에서 살 때 마당이지 싶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네모난 화단엔 꽃들이 가득했었다.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맨드라미... 열린 대문으로 이웃 사람들이 오갔고 우물가 화덕에선 국수가 익어가고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고 이맘때면 화단에 핀 꽃 중에 빨간 맨드라미꽃이 제일 강렬했다. 자식이 큰 벼슬을 하라는 소망으로 부모님은 닭 볏을 닮은 맨드라미를 많이 심으셨겠지.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서울 사는 사람들이 북촌의 오래된 골목길을 찾아 걷는 것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나도 농촌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할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이참에 꽃집에 가서 맨드라미를 사 와야겠다. 꿩 대신 닭이라고 베란다에 심어 두고 고향의 앞마당을 옮겨온 것처럼 최면이라도 걸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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