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올해 여름은 얼음 넣은 커피를 달고 살았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커피 말고는 폭염을 달래줄 마땅한 음료를 찾지 못해서였다. 덕분에 배탈이 난 적도 여러 번이었고 까닭 모를 냉병도 앓았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 기온 차가 심해졌고 찬 음료보다는 따뜻한 음료로 손이 먼저 간다.

지난 주말에는 지방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 오는 길에 문경새재에 다녀왔다. 예전에 한 번 갔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다른 숲길을 걷고 싶어서였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길목에는 빨갛게 사과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지구의 중력이 사과 한 알 한 알에 모인 듯 사과가 야무졌고 붉은 등을 단 것처럼 주변까지 환했다. 길가 상점에는 오미자청을 가지런히 내놓고 파는 집이 많았다. 이 고장의 특산물은 오미자와 사과다.

늦은 점심을 먹고 걷는데 야외극장에서는 마침 문경새재 방문을 축하하는 ‘오감 만족 맨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가수들의 열창은 흥겨웠고 힘들었던 여름날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덤 같은 공연을 잠깐 보고 서둘러 산길을 걸었다. 문경새재의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 걷는 숲길이 고요하고 오래된 돌담과 수목들이 친구처럼 정겹다. 숲길을 걷다가 보라색 옷을 입은 수줍은 아씨 같은 쑥부쟁이를 만났다. 코스모스도 군데군데 목을 빼고 있다. 가을이 와있었다.

제2관문으로 가는 길은 황톳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걸었다. 기분 좋고 시원한 기운이 황토에서 스며 나왔고 발바닥을 내디딜 때마다 고스란히 내 안에 들어왔다. 대지의 기운이 전달되는 듯 피로감이 풀린다. 걷고 걷다가 계곡의 바위 위에 걸터앉으니 심신이 홀가분해진다. 두세 시간 여유롭게 걷는 길이 건네는 청량감이었다.

숲길 산책을 마치고 차 한 잔을 하려고 둘러보니 도심에서 흔히 보던 커피전문점이 이곳에도 많았다. 우리는 차를 파는 곳에 가서 오미자차를 마셨다. 오미자(五味子)는 신맛,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이 섞여서 음미할수록 다른 맛이 난다. 마치 인생에는 여러 가지 맛이 함께 섞여 있다는 듯. 애가 아파도 일터로 가야 했던 쓴맛 같은 30대의 한때와 즐거웠던 어느 날이 교차하며 떠올랐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따뜻한 오미자차는 여름내 시달린 배를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 여름아, 잘 가라! 바람아 고맙다. 시원한 바람이 되기까지 바람은 안으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염천의 한계점에서 가을은 또 그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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