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장대비가 오는 날 도심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평소에 남편 일에 도움을 주는 고마운 부부를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러 가는 길이었다. 여름철 민어는 처진 기운을 회복시켜준다는 말이 있어서일까. 횟집에 도착해보니 손님들로 가득했다. 제철 맞은 민어는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우리도 큰 마음먹고 민어회를 주문했고 한 접시 나오는 도톰한 회에 군침이 돌았다.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회 맛이 입안에 퍼지며 감칠맛을 낸다. 묵은지와 싸서 먹으니 별미였다. 통영에서 올라왔다는 민어는 매운탕도 깊은 맛이 났고 시원했다. 더위에 지친 몸에 기운이 돌았다. 삼복염천을 견디는 몸에 귀한 대접을 한 것 같아서 좋았다.

민어 한 점에 맥주 한 잔을 하고 나니 몸에 흥이 돈다. 회 한 점 먹었다고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기분을 좋게 하는 요인은 따로 있었다. 외출하기 전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집 베란다 창고를 정리했다. 한 집에서 오래 살다 보니 묵은 살림이 많았다. 안 쓰는 그릇들과 잡동사니들을 정리했다. 불필요한 군살을 뺀 넉넉한 공간이 마음껏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상쾌한 마음이 안주처럼 작용했던 거다.

식사를 마치고 걷는 강남의 밤거리가 역동감을 줬다. 네온사인이 화려했고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빨랐고 빗소리도 시원하고 경쾌했다.
귀가 후 많이 걸어서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모시이불을 꺼냈다. 열대야에 잠을 도와주는 것이 모시이불이다. 잘 세탁해서 말린 까슬까슬한 모시이불은 단잠으로 이끄는 고마운 매개체다. 불면으로 밤을 새우고 나면 하루가 힘들어지고 삶의 질이 저하된다. 숙면은 휴식과 평온을 주는 반면 불면은 고통을 낳는다. 졸음운전은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던가. 눈꺼풀이 무겁다고 느낄 때는 무조건 잠을 자고 본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새벽에 일어나서 맑은 정신에 마무리하는 편이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하루를 돌이켜 보니 창고정리를 하고 시원해진 공간이 기쁨을 줬고 좋은 기분으로 고마운 분과 민어회를 먹어서 더 맛있었다. 게다가 시원한 모시 이불을 덮으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미각을 좋게 하는 음식의 3합에는 ‘목포식 3합’(홍어회+돼지고기+묵은지)과 ‘장흥식 3합’(키조개 관자+소고기+표고버섯)이 있다. 오늘 베란다 창고 정리와 민어회와 모시이불은 하루를 즐겁게 해 준 궁합이 잘 맞는 나만의 ‘여름날의 삼합(三合)’ 이었다. 화학적 작용을 일으키는 미각의 삼합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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