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제철 맞은 연꽃을 이번엔 꼭 봐야지, 하며 양수리를 찾았다. 물과 꽃의 정원인 ‘세미원’의 연꽃 군락지에는 물의 풍경이 덤으로 더해져 아름다움을 더했다. 몇 미터 앞에선 신비롭게만 보이던 연꽃이었는데 직접 만져보니 얇은 종이 느낌이다. 사람도 거리감이 있을 때가 좋은 건지.
연꽃이 피어난 사이엔 돌다리가 있었다. 반대쪽에서 걸어오면 둘이 동시에 비껴갈 수 없는 다리였다. 돌다리가 끝나면 연결되는 길에 세심로(洗心路)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마음을 씻으라는 건지 길을 씻으라는 건지.

땡볕 아래에서 걸은 탓인가, 연잎이 양산으로 보인다. 바람이 부니 코끼리 귀 같기도 하고. 연꽃이 발 딛고 서있는 곳은 진흙 구덩이였고 사람들이 먹고 버린 과자 껍데기들이 마음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두물머리 강가에는 며칠간 폭우로 떠내려 온 많은 쓰레기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꽃의 의미 중에는 ‘불여악구’(不與惡俱)라는 말이 있다. 물이 연꽃잎에 닿아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굴러 떨어지듯,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악에 결코 물들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인간은 본디 악한데 본성을 제어하면서 사는 존재인지.

정원에는 물을 뿜는 물고기 모양의 조각상이 역동의 힘을 전한다. 꽃이 일찍 피었다 진 연 줄기에는 연밥들이 하늘을 향한 모습이 멈춰 선 샤워 꼭지 같다.
정원을 걷다 보니 중년 부인들이 연꽃 가까이 얼굴을 대고 꽃 하나를 더하듯 환하게 웃는다. 삼대가 함께 온 가족도 보인다. 하트 모양의 포토 존에서는 멋진 한 컷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늘을 맑고 적당한 바람, 붉거나 흰 연꽃들이 절정이었다. 지금 이곳이 바로 지상의 ‘여름 낙원’ 인지도. 활짝 핀 연꽃을 유심히 보고 있자니 등불 같고 희망 같다. 더위에도 의연한 초록 잎들은 무성했고 힘이 있어 보였다. 같은 땅에서 자랐지만 제각각 소리 없이 성장 속도가 다르게 연꽃들이 피고 지고 있었다. 우리네 일대기가 이런 건지도.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미당 서정주 시인은 그의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섭섭하게/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라고 읊었다.
하루하루는 평범함의 연속이다. 꽃이 피는 특별한 날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꽃이 핀 순간과 꽃의 의미가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연꽃을 찾아 나선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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