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유전자공학과 과장 이연희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최신 제품들, 다양한 실용성 있는 것들의 탄생 뒤에는 끊임없이 자연 현상과 생명현상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기초과학이 있었다. 이 지구상에 있는 생물들의 형태, 생리, 반응 등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기작을 연구하면 그 다음에는 이러한 기작을 활용하여 어디에 유용하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생기면서 인류 역사상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온다.

생명공학 역시 생명현상을 지배하는 가장 기초적인 물질과 현상의 연구과정에서 DNA라는 물질이 밝혀짐으로써 탄생되었다. 이제 DNA를 중심으로 생명의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생명공학은 모든 자연의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기초분야로 연구의 폭이 넓어졌다. 우리가 현재 이용하고 있는 생명공학 기술 대부분은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들이 환경에 적응하여 살면서 사용하고 있는 기작을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기작 연구와 활용을 위해서는 여러 과학자들의 업적이 모여야 성과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주 극소량의 DNA로부터 특정 부위의 DNA를 대량 생산하는 유전자 증폭기술인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효소 연쇄반응) 기술은 DNA 복제 과정 메카니즘을 밝힌 아서 콘버그, 특정 DNA를 대량 증폭하는 PCR 방법의 고안자인 캐리 멀리스, 온천에 있는 세균에서 고온에서도 DNA를 합성할 수 있는 중합효소를 발견한 사이키 등 과학자들의 기초 연구 성과가 쌓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PCR 기술은 분자생물학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법의학, 고고학 등에서도 활용되는 파급효과가 엄청난 생명과학 기술 중의 하나로 지금은 모든 생명공학 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또한 식물에 외부 유전자를 도입시키는 방법은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미생물인 아그로박테리움의 생존 기작을 이용한 것이다. 아그로박테리움은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자를 식물 DNA에 삽입시켜 생존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기작을 이용하여 유용한 유전자를 식물체내로 삽입시키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최근에 떠오르는 유전자 가위 기술의 경우도 유사한 기초 연구가 바탕이 되어 활용성이 증대된 경우이다. 세균은 외부 바이러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하여 인식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에 침입했던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바이러스 유전자를 절단해서 파괴해 버림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는데 이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유전자 가위 기술이 탄생하였다. 미국 과학전문 주간지인 사이언스가 2015년 혁신 기술로 선정한 유전자 가위 기술은 빠른 속도로 의학, 농업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기술들에서 보았듯이 응용 실용화 기술들은 생명현상의 원리를 규명하는 수많은 기초기반 연구가 밑받침되어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 효과가 없다고, 돈과 연결이 안 된다고 기초 생명과학에 투자를 게을리 한다면 우리는 항상 남의 뒤만을 따라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용화에 가까운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서 원리를 꾸준히 연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비 투자 및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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