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모자와 헤어스타일은 그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한다. 내겐 집에 있는 모자만 해도 많은데 자꾸 사들이게 된다. 배우도 아닌데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모자를 써보면 마음에 쏙 드는 게 별로 없다. 여자들은 안다. 스카프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자주 사고 모자도 많은 사람이 ‘깔 맞춤’과 구색 맞춤을 위해 또 산다는 것을.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캡 모자를 즐겨 쓴다. 얼굴이 작아서인지 캡 모자가 잘 어울리는 편이고 활동적이라 좋아한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은근한 멋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었는데 이젠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중절모자를 벗은 신사는 대머리였고 고상한 이웃집 부인은 원형탈모증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썼다. 머리 샴푸를 못한 날이나 손질이 잘 안될 때 ‘귀차니즘’의 여자들이 반전처럼 모자를 자주 쓴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암 투병 환자들이 탈모를 감추기 위해 쓰는 모자는 아픔을 가려주는 위안의 도구였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자는 권력의 꽃처럼 보였다. 모자는 예의를 차리거나 더위·추위·먼지 등을 막아주고 신분의 상징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모자? 하면 떠오르는 모자는 한여름에 어머니가 밭에서 일하실 때 불볕을 가리던 수건과 함께 쓰시던 낡은 모자였다.

모자는 머리카락과 1촌 사이쯤 되나 보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라 해도 모자를 가끔은 벗어줘야 한다. 통풍이 잘돼야 모발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긴 머릿결을 찰랑이며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은 매혹적이다. 모자나 헤어스타일만 잘 선택해도 멋의 정점을 찍으며 패션을 완성시킨다. 반면에 빈티지도 아닌 너절한 모자를 쓴 중년 남자는 무기력해 보인다. 모자를 쓸 때에도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머리를 자르려고 단골 미용실에 갔다. 마침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머리숱이 거의 없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미용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전신 거울 앞에서 파마를 하고 드라이를 하고 머리를 자르는 이들의 속내를 훔쳐보는 것만 같다. 머리카락이 싹둑! 싹둑! 잘려 나갈 때마다 가위소리가 비장함마저 준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곱슬머리, 단발머리, 숏커트, 올림머리, 예술가의 긴 머리는 서로 다르게 읽힌다. 그 위에 어떤 모자를 쓰느냐에 따라 느낌은 또 제각각이다. 모자와 헤어스타일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알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먼저 인식된다. 마치 그들을 이해하려는 코드처럼. 밀짚모자를 쓰고 한적한 숲길을 걷고 싶은 한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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