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오래전 ‘나쁜 학생들’로 불렸던 초등학교 동창생 몇 명이 다시 모였다. 나쁜 학생이라고 해서 뭐 대단했던 게 아니라 무를 훔친 게 전부였지만. 수업이 끝나고 늦도록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엔 주인도 모르는 밭에 무가 자라고 있었다. 허기져 군침이 돌았고 여럿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무를 서리했다. 순서처럼 다음날 교무실에 불려가서 무릎 꿇고 두 손을 들고 벌을 서야 했다. 당시 공범이었던 우리들은 그때를 얘기하면서 크게 웃었다.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친구가 원수가 되고 원수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친한 관계에 있을 때 친구의 간곡한 돈 부탁은 거절하기 어렵다. 그 일로 돈은커녕 나쁜 관계로 전락했을 때의 낭패감이란.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명답을 찾아가는 길도 대가를 치르고 서야 깨닫게 될 때가 많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동행해 주는 친구가 고맙고, 어려운 일로 상의할 땐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친구가 좋다. 똑똑함과 가진 것을 과시하며 저 혼자만 잘난 척하는 친구는 그저 그렇게 살다가 지독한 외로움에 처해질 수도 있을 거다.

SNS를 보다가 이런 글에 눈이 갔다. “친구가 새벽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와서 내 아버지 산소를 돌아보고 술 한 잔을 올렸다. 한결같은 40년 지기 고마운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라고. 그런 친구를 뒀다니 그 친구가 잘 살아온 것만 같다.
산길을 걷다가 산에다 친구를 대입했다. 더울 때 그늘을 주는 친구,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넓적한 바위 같은 친구... 이런 친구를 가졌다면 함께 가는 길이 즐거우리라. 울창한 숲 속을 걷다 보면 친구와 우정이라는 것도 느리게 함께 자라는 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가에 청보리가 한창이다. 밭에다 또 친구를 대입해봤다.
친구를 사귀는 일과 농사일은 서로 닮았다. 돌멩이를 골라내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가꿔가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같은 씨앗이라도 토양에 따라 열매가 다르듯 친구를 만나 잘 되기도 하고 그릇되기도 하니 말이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살아가면서 느끼는 외로움도 나이만큼 커지는 걸까. 남편보다 자식보다 친구가 더 좋은 날들이 늘어간다. 스마트폰에 친구 이름이 떴다. “취나물 다 없어지기 전에 빨리 뜯으러 와!” 바쁘다고 미루고 있었다. 나물은 핑계였겠지. 외로웠던 건 아닐까.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는 누가 날 위로해 주지?” 웬만한 일들은 접고 주말엔 가평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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