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살아온 세월처럼 오래된 그릇들이 그릇장에 가득하다. 맘먹고 그릇을 정리하다가 좁은 집에서 살던 옛 생각이 났다.  
직장생활을 위해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20대 시절, 객지에서 고생하는 딸이 걱정돼 노심초사하던 부모님이 고향에서 올라오셨다. 머리엔 쌀을 이고 양손 가득 보자기가 묵직했다. 세 사람이 앉아도 숨을 못 쉴 만큼 방이 좁았고 석유곤로와 작은 찬장이 부엌의 전부였다. 마침 여름철이라 시장에서 수박 한 덩이를 사왔다.

수박은 달고 맛있었지만 아버지는 수박을 멀찌감치 바라보셨다. 어험, 헛기침을 하셨고 쩍쩍, 입맛을 다시셨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짐작이 간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웠던 것일 게다. 당신의 잘못 같았고 당신의 죄 같았던 거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그러고 계셨다. 그리곤 뚝딱뚝딱 망치질을 하셨고 부엌에 금방 예쁜 선반을 만들어주셨다.
지금은 살림살이 시설을 갖춘 방들을 구할 수도 있다지만 그때는 세입자가 살림살이를 챙겨야 했다. 비키니 옷장과 빨래건조대, 라디오, 간단한 그릇 몇 개가 전부였지만 보통 성가신 게 아니었고 놓아둘 곳 또한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선반 덕분에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선반이 생긴 뒤로 부엌을 드나들 때마다 기분이 환해졌다. 부뚜막 옆 쟁반에 어지럽게 포개졌던 작은 냄비와 그릇들이 내 눈 높이 위치의 선반에 가지런히 정돈되었다. 그릇들도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때에 비하면 모든 게 넉넉하고 편안해졌지만 그때와 같은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좋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그 시절에 작은 부엌과 방에서 느꼈던 행복감은 느껴지질 않는다. 절박함이 덜해져서일까?

아버지가 나뭇조각으로 만들어 주신 ‘아버지 표 선반’은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듯 내겐 쓸모 있는 살림의 도구가 되었다. 선반이 된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밴 버팀목이었다. 힘들 때마다 삶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물은 낮은 곳으로도 흐르지만 마른 곳으로도 번진다. 부모님의 자식 사랑이 꼭 그런가 보다. 부모님은 물이었고 나는 메마른 땅이었다. 삶이 굽이치고 거친 바람이 불 때마다 세상에 하나뿐이었던 그때의 선반을 떠올린다.
부모님은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을 너무 늦게 알았다. 비오는 날이면 고향 쪽을 바라보며 서성이다가 예전의 한때를 떠올리면 문득 행복해진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