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나이 듦은 몸이 먼저 느끼는듯하다.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내 이름 석 자도 똑바로 쓰질 못한다. 말을 하다 보면 입가에 침이 북적일 때도 있다. 육체를 홀대한 대가가 아닐까 싶다. 육체를 함부로 한 죄 말이다. 하지만 남들 앞에선 절대로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 특히 ‘사람 남자’ 앞에선 진짜로 숨기고 싶은 내 늙은 초상화다.   

그런 우리들 넷이 저녁을 먹었다. 친구 A는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데 표정이 심드렁하다. “그 좋은 곳에 가서도 아무 일도 없었어.” 여기서 아무 일은 ‘밤 시간’을 의미한다.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끝내고 급히 음식을 먹는 그녀는 애정의 허기를 음식으로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육체가 먹는 게 아니라 정신이 먹는 듯했다.
친구 B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언제나 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놈의 탱크 소리는 죽어서야 없어지려나...” 듣고 있던 친구 C가 “너희들은 아직도 한방에서 자니?”라고 말했다. 각자 방을 쓰고부터 편하고 좋아졌다는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가 따로 노는 사이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태초에 그랬었다면 인류가 유지되지 못 했을 터.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은 시도 때도 없는 남녀의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겠나.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남편과 아내, 우리들은 서로 멀어져버렸다. 기차소리야 멀어지면 기적소리라도 남기지만 부부가 멀어지고 나니 남는 건 한숨소리뿐이다. 미워하고 질투할 때가 언제였던가 싶어진다.

생각해보니 남편에게 기대한 것도 나였고 실망한 것도 나였다. 나무가 그대로이듯 그는 항상 그대로였고 나만 애걸복걸이었다. 남성호르몬이 많은 탓에 여성 성징이 사라졌다고 친구들이랑 낄낄거린 것도 나였고 등을 보이는 남편에게 섭섭함을 느낀 것도 나였다.
친구 A가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나 친구 B는 잠을 설치는 거나 친구 C가 각방을 쓰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여자 사람’인 나에 대한 실망이 먼저일 것이다. 꽃 같고 이슬 같은 ‘내가 아닌 나’를 발견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감정일 것이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오늘 밤 오롯이 나를 위한 밤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은은한 촛불을 켜고 장미꽃 향수도 뿌리고 내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잠옷까지 꺼내 입었다. 그런데 오늘 밤에도 남편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자정을 넘겨 들어올 모양이다. 안쓰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한 한여름 같은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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