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혼례식도 없는 날인데 분주했다. 깔끔한 정장으로 차려입고 머리도 매만졌다. 지난 주말엔 딸아이가 어버이날 기념 선물로 준 티켓으로 ‘마타하리’라는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세 시간이나 되는 공연을 보는 내내 눈과 귀는 화려한 대접을 받았지만 촘촘한 의자 배열은 보통의 체구인 내게도 불편함이 있었다. 몇 해 전에도 딸은 ‘00마사지’라는 티켓을 내밀었다. 막상 가보면 특별한 서비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금액이면 집 근처에서 한 번 더 받는 게 나을뻔했다.

공연을 잘 보고 오는 길에 아이의 배려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고 반면에 ‘꼭 이렇게 특별하지 않아도 좋은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심으로 이동하는 왕복거리와 옷차림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는 실속과는 거리가 있다. ‘선물’ 하면 뭔가 특별해야 정성이 가득 담긴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닌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빈자리가 줬던 큰 사랑에 가슴을 치고 또 친다. 자주 뵙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많이 웃겨드릴걸. 뭔가 그럴듯한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미룬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잘할 것만 같은데... 해마다 작약이 탐스럽게 필 때면 부모님들이 좋아하셨던 꽃이라 그런지 그리움도 커진다.
주일미사를 봤다. 강론 시간에 신부님이 농담처럼 말했다. “고해성사를 하기 전에는 몰랐다. 마치고 난 뒤에 부모님들이 어버이날을 보내고 이런저런 섭섭함을 고백했는데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고 했다. 대놓고 말을 안 해도 부모님의 속마음은 자식이 자주 찾아주길 바랄 것이다. 만나면 포옹하듯 안아드리고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도 부려보는 일. 부모님 생의 한가운데서 의미 있는 하루로 남아도 좋으리라.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전구는 전기가 들어와야 불빛을 발하는 것에 비유해 전구(인간)와 전기(존재)에 대해 역설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자신이 시간임을 체험한다. 바로 ‘지금’이 중요한 이유다.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은 작은 죽음들이다. 꽃이 피었나 하면 어느새 초록 잎 세상 아니던가.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기억 속에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여름에 들일을 마치고 오신 아버지에게 등목을 해드렸을 때 “아이, 시원해!” 하고 함박꽃처럼 웃으시던 얼굴...
물건만 선물이 되는 걸까? 꼭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특별한 날은 별로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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