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아파트 아래층에 골초 남자가 살았더랬다. 남자는 창문을 열지 못할 만큼 담배를 피워댔었다. 참다못해 인터폰으로 항의했고 그 후로는 담배연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덕분에 살맛이 난 것 같았는데 웬걸. 남자가 헬스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흡연 때문인지 금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 한마디가 혹시? 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늘 담배를 피웠다. 신문지에 말아서도 피웠고 담뱃대에 담배가루를 차곡차곡 챙겨 넣어서도 피웠다. 담배를 피우다 말고 흥얼대는 소리는 노래 같지 않은 노래였지만 노래보다 더 심금을 울렸다. 청상과부였던 할머니의 애인 겸 남편은 담배였을 것이다. 그래선지 나도 담배 냄새가 싫지 않았다. 담배 냄새라기보다는 할머니 냄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 냄새는 이런 거라고 느껴서일 것이다.
아래층에 살던 남자는 방송 일을 하셨던 분이라고 들었다.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줄담배를 피웠던 것일까. 그렇게 빨리 떠날 줄 몰랐고 서로 좋은 이웃으로 남지 못했지만 담배를 볼 때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담배 연기 속에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운 남편 얼굴도, 설움에 겨운 마음도 석탄 백탄 타듯 연기로 타올랐을 것이다.
봄철이면 담배연기 같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자주 나타난다. 기형도 시인은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라고 공장의 매연을 빗대어 말했지만 나는 담배연기가 정겹다. 할머니 같고 아래층 남자 같다.

편의점마다 담배가 종류별로 가지런하다. 케이스도 예쁘다. 가수 송창식이 노래했다. “담배 가게 아가씨는 정말로 예쁘다네. 온 동네 청년들이 기웃기웃...” 하지만 요즘에도 담배 가게에 아가씨가 있을까. 아니 담배 가게가 있기는 한 건가. 아가씨 대신 남자가 있으면 어쩌지...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여행 중에 담배의 유혹이 두 번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카페에서 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하프를 연주하는 것처럼 진지해 보였다. 쿠바 아바나의 거리에서 늙은 여인의 손에 들린 시가는 담배라기보다는 예술품처럼 보였다. 엄지손가락 보다 굵은 갈색 시가는 깊은 고뇌라도 태울 듯 폼이 났다. 흉내 내고 싶었다. 다가가서 사진을 찍자 1달러를 달라고 손을 내밀어 당황한 적이 있었다.  
오늘따라 담배가 그립다. 아니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그립다. 할머니도 아래층 그 남자도 잘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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