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장을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린다. “또, 잊은 거 아냐?”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 이해가 간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모임이 있는 걸 깜박했다. 봄 탓인지 나이 탓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진짜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은 태산 같은데 해결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모처럼 마음먹고 사골을 끓이다가 “아차!”하는 사이에 사고가 났다. 물은 말라붙었고 스테인리스 곰솥의 바닥은 까맸다. 덕분에 고약한 냄새가 남았고 나의 실수를 참회하듯 며칠을 참아야 했다. 궁리를 거듭하다가 가스밸브에 안전차단기를 설치해놓고야 안심이 됐다.

남의 일이라 편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치매로 고생하는 부모님을 곁에서 모신다는 것만이 효도는 아닐 것이다. 노인 장기 요양등급을 인정받아 요양원에 모실 수도 있을 거다. 웃어넘길 수 없는 가슴 짠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세 정거장 거리에 사는 친구는 고령인 치매 시어머니의 요양등급을 받을 요량으로 반복해서 암기 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훈련(?)을 마친 후 심사위원이 “할머니, 혼자 집에 계실 때 가스불은 누가 끄죠?”라고 물으면 “뭐라고? 안 들려. 난 그런 거 몰라.”라고 시어머니가 답해야 모범 정답이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며느리”라고 또렷하게 답해 친구의 미움을 샀다던가.

나이 탓인가. 뇌세포도 퇴화하고 기억력도 감퇴하고 건망증 증세가 자주 나타난다. 깜박 증세가 심해지면 치매로 발전한다는데,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니. 우선은 적절한 휴식으로 뇌의 혹사를 방지해야겠다. 자극을 위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동네 ‘주민센터’의 노래교실이나 박물관 교실, 외국어 강좌도 부지런히 참석해야겠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망각은 기억을 초월하려는 능동적인 힘’이라고 니체가 말했듯이 치명적인 상처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마음먹은 대로 될 리는 없겠지만 기억은 잊어버리려고 존재하는 것이겠지. 행복한 순간을 방해하는 것들부터 망각해야겠다.
어찌 보면 급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 같은 인생살이다. 잘했건 못했건 수영코치가 가르쳐 준 공식을 까먹고 개헤엄 일지라도 내 방식으로 살아나왔다.
꽃이 진 자리에 연초록 이파리들이 망각을 시작했다. 꽃 같은 시절을 보낸 후 다 잊어버렸다는 듯 초록 향연을 펼치고 있다. 이때는 무조건 걷고 볼 일이다. 스트레스는 날리고 건망증을 탈피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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