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목련꽃이 보고 싶은 얼굴처럼 무심하게 툭툭 피어난다. 터지는 꽃망울을 보면 내 몸에도 새살이 나듯 간질거린다. 목련꽃은 꽃 중에 왕처럼 도도하다가 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유행가 가사처럼 꽃잎에서 슬픈 감정이 뚝뚝 묻어난다.
걷다 보니 해맑게 피어난 꽃들이 카톡 창으로 날아온다. 남쪽에 살거나 그곳을 여행 중인 친구가 보내온 꽃들이다. 같은 벚꽃이라도 반쯤 폈거나 활짝 핀 왕벚꽃, 벌이 앉은 산벚꽃은 다른 느낌을 준다. 핑크색의 종류에도 인디언·코랄·베이비·핫핑크가 있듯. 여기저기서 꽃들이 아우성이다.

벚꽃이 만개한 분홍 꽃무리를 보면 내 마음도 환해지며 꽃물이 드는 것 같다. 황량한 들판에 불을 켠 벚꽃터널이나 가로수로 늘어선 꽃길을 거닐면 내 몸에도 플러그를 꽂고 싶어진다. 점점 시들어 가는 내 모습은 활짝 핀 꽃과 비교되며 슬며시 서글퍼지기도 한다. 사랑도 꽃도 좋은 시절은 짧은 것일까?
꽃은 감흥도 주지만 감상에 젖게도 한다. 꽃에만 넋이 팔려 한참을 바라보다가 우듬지 아래로 뻗은 나무줄기를 보면 나무색이 더 짙게 보인다. 걷다 보니 오래된 굵은 나무의 뿌리가 흙 위에 불거져 나온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멈춰 섰다. 뿌리를 유심히 지켜봤다.

꽃 앞에 서면 성급하게 꽃만 보고 즐기기에 바빴다. 줄기와 뿌리가 꽃을 피우기까지의 고통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었다. 뿌리의 역할을 떠올리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의 삶의 자세는 이제껏 우직한 뿌리의 역할은 제대로 안 하고 성급하게 꽃만 피우려고 했던 건 아닐까?
절정이라야 며칠에 그치는 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는 겨우내 뿌리로 양분을 공급하고 비바람에 견딘 것이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의 이면에는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이치 앞에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꽃은 스스로 빛나다가 나그네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역할도 하고 있었다. 꽃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묵은 때를 툭툭 털고 나도 꽃처럼 환하게 피고 싶은 욕구도 준다. 죽어가는 나뭇가지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은 마지막을 불사르는 심지처럼 강렬하다. 모진 생명력이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것만 같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빨간 립스틱에 원색의 스카프로 멋을 내고 꽃 마중 가는 길은 여심에 ‘봄불’을 질러서 좋다. 불을 내서 논두렁을 태우면 해충이 죽듯, 마음의 ‘봄불’은 갱년기의 우울함을 태워서 좋다. ‘꽃불’이라는 봄의 특수 방화범은 무죄다. 독이 되는 것을 모조리 태운 땅 위에서 건강한 꽃도 핀다. 사람이라고 크게 다를까?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