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좋아 거실 소파에서 소설을 읽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꿀잠이었다. 어릴 적 대청마루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는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만져주셨다. 귀지를 파주실 때면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이맘때면 춘곤증에 시달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인체가 따뜻한 봄날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양불균형 등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피로다. 피로감은 졸음을 재촉한다.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다가 깜빡 졸고는 내릴 정거장을 지나쳤을 때는 종점에 사는 이들이 부러웠다. 파김치로 지쳤을 때 지하철에서 모처럼 차지한 자리 앞에 노약자가 서게 되면 겉잠 자듯 나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요즘은 핸드폰 중독자들이 많아져서 보약과 같은 잠깐 잘 수 있는 기회마저 기계에 박탈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밴드, 채팅방 등 각종 방들이 많은 핸드폰의 알림 기능은 좀 쉴만하면 카톡 카톡... 진동음이 교란신호를 보내며 잠을 방해한다.
한 번은 모임에서 밥 먹고 오던 중 운전하던 친구가 깜박 졸아서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때론 쉴 새 없이 말하는 내비양은 졸음을 쫓아주는 고마운 친구다. 환기도 자주 해줄 일이다.

하품은 억제하기 힘들다. 잠을 불러오는 잇따른 하품은 불면 증세가 있을 때는 고맙지만, 한창 일할 시간에 졸음은 물리쳐야 할 악마와 같다. 졸음을 쫓기 위해 직장인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손을 씻거나, 남몰래 화장실에 가서 스트레칭을 하고 혹은 담배를 피우며 몸부림친다.
하버드대 수면연구원인 로버트 스틱골드는 “요즘 같은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느냐보다는 짧은 시간 ‘능률적’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략적 낮잠’을 장려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는 1시간당 5천 원이면 우유 한 잔과 함께 해먹(기둥 사이에 달아매어 침상으로 쓰는 그물) 위에서 낮잠을 즐길 수 있어, 인근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몰려오기도 한단다.
농부들은 들판에서 일하다가 그늘에서 잠시 눈을 붙이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개미나 벌, 들쥐 등만 조심한다면.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봄이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친구와 밀양 시장을 돌다가 오래된 장터국밥집에 들어가서 술 한 잔하고 계산하려는데 국밥집 할매가 카운터 앞에서 졸고 있는 게 아닌가? 꽤나 고된 하루였나 보다. 깨우고 나서 후회했다. 잠시 눈 좀 더 붙이게 동동주나 더 마실 걸….
잠은 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갖지만 평화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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