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를 올리고 사람을 불러다 위령제 같은 의식을 치렀다. 무당은 아버지가 새가 되었다고 했다. 주발에 수북한 쌀 위에 찍힌 새 발자국 흔적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승의 짐 다 내려놓고 편히 쉬시라고 빌었다. 그 후로 우물가 옆 대추나무에 앉아있는 새만 보아도 아버지의 환영처럼 쉽게 쫓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주말에 위안부 영화 《귀향》을 봤다. 꽃다운 나이인 14세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간 정민은 가족의 품을 떠나 제2차 세계대전의 차디찬 전쟁터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20만 명의 소녀들이 그렇게 끌려갔고 238명만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46명만이 남아있다.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 우리의 조상들이 끌려가서 능욕을 당했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시체 위에 버려져 불타는 주검의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위안부의 처참한 참상이자 민족의 아픔이었다.
영화 제목도 단순한 귀향(歸鄕)이 아닌 귀향(鬼鄕. Spirits’ Homecoming)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짓누르는 먹먹함과 분노감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일본은 과거사 왜곡과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망언을 계속하지만, 위안부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은 되돌릴 수도 바꿀 수도 없다. 부끄러웠던 사실을 끄집어내 영화로 세상에 알리고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 실천들은 일본이 뒤늦게라도 위안부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를 바라는 심정의 시작일 것이다.
이 땅의 한 여자의 입장에서도 위안부들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은 직접 조상은 아니더라도 오늘을 있게 한 역사의 희생양이기에 마음이 아파진다.

영화의 끝 장면에는 살아있는 몸 대신 하얀 나비가 부모님과 살던 고향집으로 들판을 지나 너울너울 날아가고 있었다. 하얀 나비는 슬픈 소녀의 넋으로 보였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게다.
고향 텃밭 장다리꽃 위에 날아드는 하얀 나비는 옷고름을 적시듯 슬픔을 불러온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에서 아버지의 환영을 보듯, 나비의 모습에는 이웃집 누이 같은 얼굴이 어리는 것만 같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그리스 신화에서는 죽어서 망각의 강인 레테(Lethe)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며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는다고 했다. “우리의 위안부 할머니들이여! 나비로 날아들어 고향집 정화수 한 모금 드시고 넋이라도 부디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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