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2월에 간 다낭은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다낭이 요즘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들도 북쪽인 하노이 쪽에서 중부지역인 다낭으로 많이 옮겨오고 있다. 우리 농촌 총각들이 베트남 신부를 맞고, 삼성, LG 등이 현지에 공장을 짓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서인지 베트남을 오가는 이들이 많아졌다.

인천공항에서 5시간 만에 도착한 다낭 거리에는 오토바이 행렬이 넘쳐났다. 베트남은 유난히 젊은 인구분포도가 높다.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비중이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한다니. 젊은 경제 인구가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나보다. 길을 걷다 만나는 젊은이 중 한 사람은 혹시 화산 이씨(花山 李氏: 베트남에서 유래한 한국의 성씨)의 후손일지도 모르겠다.

아담한 체구의 베트남인들은 손재주가 많다고 한다. 목공예와 도자기 공업이 발달돼있다. 기념품 가게에는 그들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와 ‘논’ 모자를 새긴 자잘한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호이안’이라는 구시가지는 작은 유럽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 건물들이 유럽풍이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이란다. 16세기에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불교 인구가 많고 연꽃을 국화(國花)로 삼아서인지 거리에는 연꽃 모양의 연등이 알사탕처럼 달려있다. 야시장이 펼쳐진 강가는 몽환적이다. 나도 소망의 연등을 띄웠다.

백사장이 20㎞에 달하는 미케 해변에서 코코넛을 마시며 벤치에서 쉬다가 동두천에서 근무했다는 미국인을 만났다. 돌발적 우연 치고는. 7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휴양소가 있었던 해변가엔 화려한 리조트들이 많아 허니문들이 많이 찾는다. 해변 한쪽에는 ‘투에통’(둥근 낚싯배)을 타고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보인다.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칭하는 ‘포(Pho)’는 국내에서도 ‘포 타이’, ‘포 메인’등 쌀국수집으로 이미 익숙해서인지 현지식 쌀국수는 입맛에 잘 맞았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다낭 시내를 가로지르는 한강 위에 황금용 모양을 하고 있는 용다리는 밤이면 꿈틀거리는 조명으로 매력과 힘을 뿜어댄다. 베트남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의 강 이름도 한강인데 우리의 한강을 따라 기적이 거듭되길 희망했다.
어디를 봐도 오토바이 행렬이 길다. 그곳의 오토바이 엔진 소리는 발전하는 베트남의 소리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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