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아침상에 매생이 굴국을 끓여 올렸더니 식구들이 훌훌 뚝딱 그릇을 비운다. 제철에 맞는 음식이었나 보다. 요즘 3천~4천 원이면 매생이 한 덩이를 살 수 있다. 귀한 음식인데 저렴해져서 반갑다. 식구들 입맛을 돋우려면 제철 음식을 가끔 밥상에 올려야 한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보낸 싱싱한 해산물을 버스터미널에서 종종 받는 이웃들이 부럽기만 하다.

엊그제 모임에서 간 식당 이름은 ‘계절밥상’이고 가까운 곳에는 ‘자연별곡’이라는 식당이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체인점들이다.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제철에 나는 계절음식을 좋아하고 자연소리만 들어도 좋고 보면.
십여 년 전엔 위생 복장을 하고 한여름에 불 앞의 좁은 조리대에서 한식조리사에 도전해서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 후 은근히 색다른 요리를 기대했던 식구들에겐 실망감을 줬고, 게으름 탓인지 음식의 종류는 크게 바꾸지 못하고 지냈다.

과일과 선식으로 아침을 대체해 봐도 우리 집은 늘 실패다. 밥과 국이 있어야 한다. 설거지와 번거로움이 싫고 아플 때는 영양제 한 알로 식사를 해결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추운 겨울 빈 속에 커피 한잔 들고 급히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따뜻한 밥공기의 온기가 생각난다. 밥 한 공기 속에는 마음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허름한 국밥집에 번을 서는 밥숟가락/간단없이 목구멍을 들명나명 공양해온/뜨겁게 몸을 녹이는 봉긋 솟은 손등이다.//두레상에 둘러앉아 달그락 화음을 낼 때/이야기꽃 피워 올린 그 몸짓 따사롭다/모질게 닳아질수록 배가 불룩! 큰 보시.(자작시, 「숟가락, 보시에 관한 짧은 필름」중 일부)
오물오물 입속으로 음식을 나르는 숟가락은 자식 입으로 들어갈 때 더 사랑스럽다.

요즘 남쪽에서 올라오는 섬초와 봄동이 다디달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다는 냉이와 모시조개를 넣고 끓인 된장국도 별미다. 집 근처에 즐비한 프랜차이즈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을 제치고 ‘도다리 쑥국’을 찾아 남해로 달리는 것도, ‘황복(黃鰒)’을 찾아 봄철 임진강변을 찾아가는 것도 어떤 의식처럼 한 해를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맘때 제철 음식은 겨울을 버틴 땅과 바다의 기운도 녹아있어서일까. 낡은 세포에 싱싱한 피를 수혈 하듯 좋은 영양분을 준다. 자연산이 좋은 이유다.
농부가 거름을 주고 한해 농사를 시작하듯, 새봄은 몸속의 부족한 기운을 보충할 시점이다. 건강한 몸이라야 즐거움도 온전히 즐긴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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