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이맘때면 어린 시절, 설 무렵 안방 풍경이 떠오른다. 요즘은 집에서 떡 썰 일이 없지만 그때만 해도 읍내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 와서 떡을 썰어야 했다. 밤새 떡을 써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엄마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아버지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푸근했다. 손이 벌게지도록 한참을 떡을 썰어주시던 그 칼은 사랑의 표현이자 정이 묻어났던 도구였다.

차례나 생일 등 많은 식구들이 모이는 날엔 문제가 없는듯하다가 싸움으로 치닫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별거 아닌 일로 큰소리가 나고 불편해진다. 도회지 자식들이 모인 고향집은 더 이상 꽃만 피는 산골이 아니다. 싸움의 발단을 들여다보면 제각각 잘 살고 못 사는 질투심이 깔려 감정에 작용할 때가 많다.

“세치 혀 속에 칼 들었다.”라는 선인들의 말은 ‘화(禍)’도 세치 혀에서 일어남을 비유한 말이다. 무심코 한마디 툭! 던진 치명적인 말은 비수처럼 심장에 박힌다. 이럴 때는 독설을 바로 내뱉는 시퍼런 칼날보다는 할 말이 있어도 참는 무딘 칼이면 좋겠다. 무쇠로 된 칼만 칼이 아니다. 말의 절제가 필요하다. 제 몸의 상처야 자가진단과 치료가 쉽다지만 상대방의 상처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예로부터 길을 나설 때는 호신용으로 검(劍)을 허리에 차고 떠났다. 때와 장소에 따라 검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 되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이 되기도 했다.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는 습관으로 독설과 비난, 아첨의 말은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는 말(言)의 칼날을 가졌다. 이왕이면 덕담, 따뜻한 말로 주변 사람에게 이롭게 쓰일 칼날을 품어보면 어떨까.

검도에서 무서운 칼은 칼집에서 뽑지 않은 칼이다. 상대방의 기세를 파악하기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칼은 ‘보이지 않는 칼’이다. 입춘도 지났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복수초도, 봄을 준비하는 꽃들도 칼바람과 맞서 안에서 칼을 갈고 버틴 후 세상에 꽃이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내민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에 보면 일본인은 손에 아름다운 국화를 들고 있지만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차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의 다름을 상징했다. 품었던 희망을 내 것으로 꽃피우려면 내게 향하는 칼날은 날카롭게 겨눌 일이다.

칼은 두 개의 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칼에서 상반되는 칼날이 적용된다. 칼자루의 사용권은 내게 있다. 언어의 칼이든, 무쇠칼이든 무디거나, 날카롭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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