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임에 가면 KBS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가 화젯거리다. 저마다 혼기에 찬 자녀들을 둬서인지. 흥분했다가 맞장구쳤다가 극중 ‘임산옥’(고두심 분)의 장남인 ‘형규’의 행동에 마치 제 자식인양 화를 내고, 고두심의 연기에 혀를 찬다. 산옥의 시한부 삶이 식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오열하는 남편과 급변하는 식구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한다. 우리네 삶도 고만고만하고 그보다 더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서인지 막장드라마인 듯 알면서도 중독처럼 빠져든다.

‘엄마’라는 단어만큼 무조건적인 푸근함이 또 있을까?
모임에서 첫 손주를 봤다는 한 친구의 얘기는 친손주보다도 외손주 얘기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가 난 딸이 낳은 모계혈족이라 그런지. 친정엄마로서 느꼈다는 감정들이 재밌다가 슬퍼진다. “손녀딸을 목욕시키고 우유를 먹이다가 나보다는 사돈을 더 닮았다는 확신의 기분은 배신당한 느낌”이란다. “남의 손주 봐주느라고 내가 왜 마실도 못 가고 이러고 있지?” 라고 속상할 때가 많다고.

딸들은 결혼 후 맞벌이를 하게 되면 정답처럼 친정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한다. 친정은 언제든지 급할 때 도움을 청하는 ‘119 본부’인 셈이다. 둘이 벌지 않으면 일어서기 힘든 세상이고 보면. 육아문제는 코앞에 현실이니 면전에 대고 냉정하게 도움을 거절하기가 계모도 아닌 담에는 어려운 문제다.

결혼 후 직장여성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주변의 희생은 필수다. 대부분의 몫을 친정엄마가 감당하는 게 현실이다. 자녀 출가 후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며 재밌게 살만하면 어느새 혹을 데려와 도움을 청하는 딸들. 가뜩이나 갱년기에 우울해지는 거다.

백화점에 가도 사고 싶은 것도 크게 먹고 싶은 것도 없단다. 그냥 무력감 앞에 자신감이 없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싫다고.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 “양쪽 부모님 병수발하느라 지친 내게 이젠 또 딸이 제 자식을 봐달라고 들이민다.”

세상의 딸들아!
비록 어미들이 너희를 낳은 죄로 애는 봐준다 치자. 솔직한 속내를 말은 못해도 엄마의 본색 뒤엔 한 여자의 번뇌와 갈등이 많다는 것도 헤아려다오. 너희들이 엄마 입장이 되면 이맘을 알게 될는지…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어찌 보면 나는 두 개의 슬픔을 갖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딸이 내 발목을 잡으며 주게 될 슬픔과, 아들 또한 훗날 장가들면서 정을 도려내고 변해갈지 모르니.
하지만 어쩌랴. 삶은 잠시 기쁨과 슬픔의 연속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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