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속이 상할 때면 훌쩍 떠나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낯선 길을 거닐다 어떤 날엔 인근 사찰 경내를 들르곤 했다. 맑은 풍경(風磬) 소리는 진정제처럼 마음을 가라 앉혔다. 목탁 소리는 세속의 번뇌를 털어내듯 들렸고, 먹물빛 승복은 생각마저 무심하게 하라는 듯 느껴졌다.
최근 출가 상한 연령 50세를 연장하는 ‘은퇴 후 출가제도’가 호기심을 준다. 매년 300명 이상이던 출가자가 작년에는 200여 명으로 감소해서인지.

스님들이 동·하안거에 드는 것이나, 보통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체험해 보는 것도 나를 돌아보는 면벽 수행과 참회의 기회를 갖는 시간이 필요해서일 터. 며칠이나 몇 달이라면 모를까. 보통으로 살다가 일시적 가출도 아닌 출가(出家)라니.

내가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평생 식구들의 밥벌이에 지친 가장들은 은퇴 후 느리고 편안함을 기대했다가 녹록치 않음을 새삼 절감할 것이다. 이래저래 고달픈 건 마찬가지. 이참에 삭발하고 세상의 인연과 욕심을 끊고 수도승의 길을 꿈꿀 수도 있다. 이 또한 5~7년의 혹독한 수행 과정을 거쳐야 한다니 튼튼한 건강도 담보돼야 할 것이다. 석가가 출가한 건 29세 때인데 50대에 퇴직 후 출가하는 것도 어찌 보면 100세 시대를 사는 하나의 코드로도 읽힌다. 이런 삶의 다양성의 이면엔 노년의 삶도 행복하기보다는 번뇌가 끊이지 않음의 방증이리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일찍이 수도승의 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속세의 삶을 살아본 후에 출가의 길이라니. 산전수전 다 겪은 후라서 깨달음과 부처님의 설법이 귀에 더 와 닿을까. 아니면 현실도피처럼 막연하게 생각했던 혹독한 수행의 길은 또 어떤 행복감과 굴레를 줄지 궁금해지는 거다. 출가의 조건이 혼자 살아야한다는 조건이 되는 건 아닌지. 세상에 쉬운 길은 없나 보다.

출가외인인 나를 돌이켜봐도 ‘출(出)’ 자만 들어도 많은 걸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도 있고 보면 스님이 되는 출가라고 크게 다를까만.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듯 본인의 삶은 불행하다고 느껴지기 쉽다. 책방에 가면 ‘혜민’ 스님이나 ‘법륜’ 스님이 쓴 책들이 이 세상을 잘 사는 처세법처럼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다. 막상 읽어보면 속세의 거친 삶에서 한발 비켜선 초인 같은 여유와, 분노라곤 찾아보기 힘든 말랑한 말들은 내 손에는 잘 잡히질 않는다.
어디에 있든 내 식대로 행복해지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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