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새해가 밝았는데 뭐 달라진 것도 없고 특별히 계획했다기보다는 무작정 남쪽으로 달렸다. 홀가분하게 철저하게 나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친목 모임에 가면 흉보는 듯하다가 결국은 돌려서 제집 자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음식을 먹다가 수저를 놓고 싶어진다. 지난주에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막둥이 아들이 올해 수시에서 서울대, K대 4년 장학생 등 4군데 유명 대학에 동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평소에 안부 없이 지내다가 뜬금없이 날라 오는 이런 소식들이란.

어젯밤 꿈속에서는 동창생끼리 여행을 갔다가 한 친구가 치명적 약점을 건드리며 시비가 붙어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다 화들짝 깼다.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흥의 편백 나무숲에는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시원스레 서있었다. 요즘의 화두처럼 힐링, 이곳에도 ‘숲 속 힐링 코스’라는 게 있다. 모름지기 세속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와야 치유가 되는가 보다. 숲 속엔 황토집이 있고 연못 옆에는 한겨울인데 동백꽃이 만발했다. 빨간 꽃을 보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다.

나무 아래에는 맥문동 군락들이 까만 열매를 달고 눈동자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숲 속에는 나무로 만든 컵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맑은 바람을 한잔 권하는 듯. 한참을 걷다 보니 나뭇잎이 흔들리며 바람소리가 거세다. 숲 속을 이리저리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일행도 없이 혼자 걷다 보니 혼자만의 자유가 뭐 그리 좋다고 오만을 떨었는지... 슬며시 사람이 그리워진다. 혼자 있다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한다면. 고독이 두렵게 느껴졌다. 남들이 내게 뭔 그리 관심을 둘까만, 막상 타인 앞에 내 모습이 쓸쓸하게 보이는 것은 들키고 싶지 않다.

그런 연유라서인지 남과 잘 안 어울리는 사람들도 자식의 혼사를 앞두고 혹은 노부모를 모시게 되면 남의 경조사에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다니는 것을 본다. 품앗이 전략인 셈이다. 때로는 철저하게 혼자 외로워야 면역력도 생기고 창의력도 생긴다고 한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함께 어울릴 때 인간미가 난다. 숲길을 내려오다 보니 참나무들이 보인다. 굵은 나무에는 큰 옹이가 박혀있다. 작은 나무들을 보호하듯 찬바람에도 기품있게 서있다. 나무들도 모여서 숲을 이룰 때 한여름에 그늘도 커진다.

새해엔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짙은 사람 냄새를 맡으며 더불어 살아보고 싶다. 때로는 불협화음이 있을지라도, 혼자만 잘 살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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