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상(李箱)은 그의 소설 《지주회시》(1936)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오십 전짜리가 딸랑 하고 방바닥에 굴러 떨어질 때 듣는 그 음향은 이 세상 아무것에도 비길 수 없는 가장 숭엄한 감각에 틀림없었다.”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과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풍자했다.
지갑에 돈이 없으면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진다. 카드가 대세인 세상이다. 집을 나서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카드만 대면 해결된다. 식사할 때, 물품 구입,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를 때에도 카드 한 장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러다 보니 지갑에는 현금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최소한의 비상금 정도만 넣고 다니게 된다.

세밑의 거리는 날씨만 추운 것이 아니다. 도심의 거리에는 ‘12월의 마스코트’인 구세군 빨간 자선냄비가 행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와 송년회 모임을 마치고 칼바람 부는 도심의 거리를 걷다가 구세군 냄비와 마주쳤다. 친구는 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서 냄비에 넣자 ‘딸랑’하는 경쾌한 소리가 기분 좋게 따스함을 준다. 나도 친구처럼 해보려는데 지갑을 뒤져봤지만 정작 동전이 없다. 지폐도 없다. 손이 부끄러워졌다.
이맘때가 되면 따뜻한 연탄 한 장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는다.  

돌이켜보면 나도 가난한 겨울을 여러 해 지나와서인지 추운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관심이 더 가고 따뜻하게 겨울을 나는 이들이 많길 기도하게 된다.
요즘은 정보통신산업이 발전하면서 휴대가 간편한 전자화폐인 플라스틱머니(신용카드) 시대다. 플라스틱 머니인지(플러스+머니)인지? ‘틱’소리가 제대로 안 들릴 때가 있다. 나이 탓인지. 겨울 탓인지.

아차! 머니에는 단순한 머니가 아닌 다른 플러스의 뜻도 있는 건가 보다. 마음도 함께 실어 나르는 걸까? 불우한 사람에게 맘먹고 만원 한 장을 건넸을 때 분명 건넨 건 지폐 한 장이지만 상대방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고, 아플 때 약을 살 수 있는 힘이 된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카드마다 포인트 적립 혜택도 누리려면 지갑 외에 별도로 카드지갑을 갖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편리한 플라스틱머니 시대라지만, 얇고 가벼운 카드는 아무리 만져 봐도 느낌이 없다. 골드다, 플래티넘 카드다 신분상승을 시켜줘도 나는 호주머니가 불룩한 현금이 좋다. 지갑이 두둑해야 든든하다. 자선냄비 앞이나 좋은 일에 쓰는 모금함 앞에서 넉넉히 넣는 오만함도 맘껏 누려보고 싶다. 이 또한 나이 들어가며 망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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