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백화점 엘리베이터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다음 차례로 밀렸다. 젊은 주부가 아이를 태운 큰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자 몇 명 타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탈수가 없다. 시중에 인기 있다는 고가의 외제 유모차였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황당하다. 엘리베이터를 독채로 전세 낸 것처럼 뒷사람들에게 미안한 기색조차 없는 그런 행동은 공간 사용에 대한 무언의 폭력처럼 느껴졌다.
한 번은 시골길을 걷는데 동네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유모차에 몸을 의지하고 밀며 가신다. 유모차에는 삶은 고구마가 비닐봉지에 담겨있다.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마을회관에 친구를 만나러 가신 단다. 낡은 유모차가 편리하다고. 자잘한 물건도 실을 수 있어 좋고.

주말에 시골의 들길을 걷다가 무궁화호를 타고 오는 창가에서 두 여자의 그림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백만 원이 넘는다는 외제 유모차를 갖고 다니는 도도한 젊은 새댁도 먼 훗날엔 할머니가 될 것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의 내 입장에서 두 여자의 삶을 헤아려 보았다.
등이 휜 할머니의 몸이 주는 느낌은 애잔했지만 쭈글쭈글한 얼굴에는 맑은 미소가 있었다. 큰 욕심 없이 들꽃처럼 편안해 보였다. 한편 도시의 젊은 새댁은 물질적 충족감으로 고가의 유모차와 비싼 옷과 장신구로 치장은 했지만 얼굴엔 여유라곤 없고 이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공용 공간에서 작은 유모차를 사용하는 배려심이 부족했다.

초겨울 들녘을 가르며 기차가 상행선을 달리고 있다. 다시 두 여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엔 청첩장이 자주 날아든다. 친구 딸이든 식장에서 처음 만나는 지인의 딸이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면 왜 이리 마음이 아리고 짠해지는지 모르겠다. 저 멀리서 출발한 높낮이를 알 수 없는 세파의 파도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인가. 결혼식장에 가면 주책없이 눈물이 자주 난다. 마치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여자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큰일들을 치르면서 몸 한구석에 생강을 달고 사는 것처럼 짠하며 아리다.
기차에서 잠시 꿈을 꾸었다. 내가 젊은 날로 돌아가 고가의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외출하는 꿈을. 하지만 그 꿈이 실현된다 해도 별로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무례한 여인도 이 시대가 만든 것일까? 젊음 자체가 행복인 시대가 다시 오길 꿈꾸고 싶다. 내가 나약해져서인지, 각박해진 세태 탓인지, 지금 이 세상 이대로라면 나 돌아가지 않을래...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