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그곳에 다녀오면 사람들의 성향이 대략 파악된다. 노래방이라는 방이다. 어떤 모임에서는 초면에 식사를 마치고 단숨에 노래방으로 직행할 때도 있다. 몇 곡을 듣다 보면 흥의 많고 적음, 지난 삶의 내력이 마이크를 통해 껍질을 벗는다. 잘 고른 발라드인지 아닌지도 바로 알 수 있다. 가곡만 부르는 고상한 부류들은 반갑지 않다.

한 사람의 노래를 두세 곡 들어보면 성향이 낙천적인지 우울모드인지, 아물지 않은 상처가 많은지, 신나는 곡을 열창해도 알 수 없는 슬픔의 그림자가 전해질 때가 있다. 고정적 이미지를 깨고 단숨에 망가지거나 대단한 끼를 발산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가 즐겁다. 노래방은 간이역처럼 고단한 삶에 쉼표를 준다.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래를 부르는 일은 다른 장르에 비해서 손쉽게 즐길 수 있고 서로 간 친밀감이 생긴다. 마이크 앞에 서면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나를 돌아봐도 언제 한번 그다지 주인공으로 살아온 적이 있었던가? 비굴함을 적당히 감추고 비주류로 살아온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TV 프로인 ‘복면가왕’이나 ‘히든 싱어’의 인기 비결도 익명성 뒤에 잠재된 에너지가 부담 없이 폭풍처럼 발산되기 때문이리라. 대학가를 지나다 보니 ‘코인 노래방, 1000원에 3곡’이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공중전화박스 같은 작은 공간의 노래방이다. 점점 노래도 어울려서 노는 유흥이 아닌가 보다. 혼자 부르고 혼자 만족하는 한 평 공간에서 피에로처럼 흉내 내는 시대로 변하고 있는 건지도.

걷다 보니 새로 오픈한 화장품 가게 앞에서 이벤트 걸이 음악에 맞춰 현란하게 춤을 춘다. 슬픔을 숨긴 채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겉과 속이 다르게 연기하듯, 우리는 많은 시간을 감정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잠시 접고 거리의 방, 노래방에서 충전해 보는 일. 극히 건전하게. 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노래방을 선호한다. 땀이 흠뻑 나도록 가왕이 된 것처럼 맘껏 질러보는 일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하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완전 연소’라는 말이 좋다. 태울 땐 미련 없이 활활 태우고 재로 돌아가는 일. 어쩌면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고, 어정쩡한 태도나 행동은 타다만 장작처럼 쓸모가 떨어진다. 노래방에서 열창하는 주인공을 보면 내 가슴도 뜨거워진다. 자신만만한 열정이 좋다. 노래방을 나오다 수북하게 쌓인 빈 맥주 캔을 보며 한편으로는 ‘쓸모 있는 방’이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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