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인근 고교에 붙어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안내 현수막을 보니 작년 이맘때가 떠오른다. 재수생 아들을 만나러 시험이 끝날 때쯤 다시 고사장을 찾았다. 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이 몰려나왔다. 그 와중에 한 젊은이가 교문 앞에서 돌돌 말린 붉은 카펫을 펼쳐놓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고사장에서 나오는 친구를 카펫을 밟고 걸어 나오게 하고, 와락 끌어안고는 뜨거운 격려와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대학생인 친구가 재수의 길을 걸어온 친구를 위해 마련한 깜짝 이벤트였다. 어느 국제 영화제에서 붉은 카펫 위를 걸어가는 배우보다도 주인공은 빛나고 있었다.

청년들의 속 깊은 우정의 단면을 보았다. 시험 결과도 중요하지만 “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느끼게 해준 한 장면에 추위마저 무릎을 꿇었는지 주변이 훈훈해졌다.
문득 나의 옛 친구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을운동회 날, 달리기 대회에서 상을 탈 욕심에 무리하게 달리다가 넘어져 무릎을 크게 다쳤다. 상처는 오래갔고 무거운 내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한동안 등하교를 해줬던 고마운 친구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더 친해졌고 힘들 때면 따스했던 그 친구의 정이 생각난다.

험한 세상을 건널 때 다리(bridge)와 같은 존재를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때로 역경은 참된 친구와 거짓된 친구를 가려주기도 한다. 좋은 친구는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고 날카로운 충고 한마디는 인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계속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급급하다. 팍팍한 현실은 여유 있게 친구를 사귈 시간조차 앗아간다. 가끔은 상상해 본다. 부모의 존재가 지상에서 사라진 뒤 의지할만하고 흉허물 없이 터놓고 서로 잘 통하는 친구를 가졌을까? 내 아들딸들은.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정말 다급할 때 조건 없이 손잡아 주고 힘이 되는 친구를 갖게 되길 마음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이해관계를 떠나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친구, 푸근한 산과 같은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니까.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보면 어린 왕자가 고독할 때 사막에서 지혜로운 여우를 만나고 길들여지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각자에게 상대방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 변해간다. 생각만 해도 좋은 친구는 세상에 ‘친구’라는 큰 별 하나를 더한다. 친구가 있는 밤은 덜 외롭고 어둠이 검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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