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경북의 청송과 영양을 시월에 둘러보는 일은 가을의 깊은 속살을 만져보듯 정감이 있었다. 청송에 들어서자 과수원마다 빨갛게 불을 켠 사과나무들이 장관이다. 청송에 위치한 김주영 소설가의 ‘객주 문학관’은 생존해 있는 작가의 문학관으로 이례적이며 폐교를 개축한 사례로 숙식이 가능한 편리한 시설을 갖췄다. 작가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후 변화 없는 삶이 따분하고 지루해서 전국에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찾아다니다 ‘객주’라는 걸작을 남겼으니 결핍도 작가에게는 필수적 요소 인가보다. 전시관에서 소설 속 캐릭터인 보부상들의 활동상의 재현을 돌아봤다. 교실이 있던 자리를 개축한 방에서의 하룻밤은 마음마저 학창시절로 돌려놓는 듯싶었다.

둘째 날엔 ‘승무’로 잘 알려진 조지훈 생가가 있는 영양의 주실마을을 돌아봤다.
마을에 들어서니 깔끔한 농로, 똑같은 기와지붕과 잘 익은 감나무가 고즈넉한 풍경을 준다. 하지만 마을을 돌아보는 내내 동네에 울려 퍼지는 격에 맞지 않는 불쾌한 방송이 작가의 생애를 반추해보는 여정에 큰 방해가 되었다. 한복에 구두를 신은 듯 엇박자의 부조화가 소음으로 들렸고 문학마을이란 이름을 흐려놓았다.

몇 해 전에는 전북 부안에 위치한 한 문학관을 돌아봤다.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건립한 문학관은 외형은 거대하지만 관람객이 많지 않고 휑했다. 처음 가본 나의 시각에도 운영에 대한 걱정이 될 정도였다.

전국에 산재한 문학관은 100여 곳이 되지만 색깔이 뚜렷하고 단단한 콘텐츠로 무장한 문학관은 몇 곳 안 된다. 작가의 소장품이라곤 펜대 몇 개와 습작 원고, 작품집을 전시해놓고 건물 한 쪽에는 거미줄이 쳐진 문학관을 돌아보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나의 경우는 작가의 치열한 정신 한 줄을 내 삶에 반영코자 문학관을 찾는다. 차별성 없이 생겨나는 그저 그런 문학관들은 오히려 작가의 가치를 실추시킨다. 둘러보고 오면 그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되고, 또 가고 싶어지는 그런 문학관을 만나고 싶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유명 작가의 문학관 건립은 관광객 유치와 수입도 올릴 수 있지만 접근성도 고려해야 한다. 문학관에서 도서실과 문화교실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무늬만 화려하고 프로그램이 텅 빈 문학관 건립은 이제 그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난 길 위에서 만난 문학관이든 문학마을에서 가치 있는 용기를 얻고, 문학을 이해하는 촉매제가 되고, 지역의 시너지 효과마저 기대하는 일은 너무 많은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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