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KBS채널 ‘우리말 겨루기’에 나오는 실력 있는 출연자들을 볼 때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승자가 주부일 때면 같은 주부 입장에서 어려운 낱말들을 정확히 맞춰 나갈 때 나의 얕은 어휘 수준이 부끄러워진다. 그들은 달인이 되기 위해 냉장고 문 한쪽에 국어 낱말사전을 한 장씩 붙여놓고 틈틈이 외우기라도 한 걸까? 채널 M-net의 ‘쇼 미 더 머니’라는 프로는 힙합 오디션이다.

빠른 랩과 춤은 요즘 젊은이들의 삶과 내면을 드러내듯 절규하는 가사가 숨 막히게 먹먹하다. 출연자가 열광하는 가운데 전광판에는 돈의 액수가 빨간 숫자로 달아오른다. 노래 실력이 곧 상금인 숫자를 보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나도 모르게 몰입된다. 노래 가사는 마치 젊은 날의 한 때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이종격투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사각의 링 위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승부를 가르는 불꽃 튀는 싸움이다. 내가 응원했던 선수가 피 흘리고 쓰러지면 같이 아파하고 이기면 크게 기뻐하며 환호했던 시간이었다.

우리말 겨루기의 한 우승자의 뒷얘기를 들어보면 “1년 동안 낱말을 외우며 준비했다”라고 하니 각고의 노력이 짐작된다. ‘쇼 미 더 머니’에서는 ‘기적이 가능한곳 ’이라고 슬로건을 내건다. 마이크가 유독 간절해 보인다. 이종격투기의 링은 피를 흘리는 잔인함이 본능을 더욱 부추긴다. 우리말의 달인을 가려내는 ‘우리말 겨루기’든, 실력 있는 래퍼의 등용문인 ‘쇼 미 더 머니’든, 한판 승부로 결판이 나는 ‘이종격투기’도 돈이 걸린 게임이라 더욱 치열하다. 저마다 내면에는 폭탄 같은 기운이 있다.

좋은 방향으로 분출되면 대단한 에너지는 돈으로 전환된다. 어떤 것에 끌린다는 것은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들이 대신해주는 강렬한 대리만족감 때문이 아닐까. 이런저런 프로그램과 경기를 보면서 과연 나는 이제껏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가? 반문하게 된다. 우리말의 달인도 노래하는 래퍼도 링 위의 선수도 내 안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표출되지 못한 또 다른 나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용기가 부족해서 쉽게 포기하는 일들이 많았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성공하는 이들은 긍정을 부추기는 선의의 독(毒) 같은 비장한 의지가 있다. 그들의 치열함을 닮고 싶다. 이제껏 전력투구(全力投球) 해보지도 않고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막연히 바랬던 건 아닌지. 현관문을 나서며 오랜 시간에도 녹슬지 않을 마음의 칼을 갈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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