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명절이면 음식상을 차려놓고 사진을 찍어 멀리 있는 아들에게 전송한다는 친구가 있다. 외국에 있어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을 사진으로나마 대신하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책장 정리를 하며 앨범을 보다가 온 가족이 함께 찍은 흑백 가족사진을 보았다. 누렇게 바랜 사진은 40여 년이 훌쩍 지난 사진이다. 그중 세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흑백사진이 아득한 세월의 한 때를 불러온다. 이렇듯 사진은 그리움을 구체화 시킨다.

맘먹고 떠난 아내와의 나들이가 사진에 후순위로 밀려난 것 같아 씁쓸했다는 남편들도 있다. 사진 기능이 내장된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부터 음식점이나 거리에서 절제 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꼭 필요한 사진이 아닌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듯 A컷을 건지려는 건지. 셀카봉까지 동원해서 억지 표정을 짓고 찍는 모습을 보면 사진에 빠진 중독자처럼 보이고 때로는 공해로 느껴지기도 한다. 새로운 풍광 앞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음미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안 되는 걸까. 마음 깊숙이 심상(心象)으로 차곡차곡 담아두는 일도 중요하다. 대상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않고 사진을 찍느라 놓치고 마는 깊은 맛과 의미는 무엇으로 보상 받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방충동 욕구를 갖고 있다.

고대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미메시스(mimesis)’라는 문학용어를 빌어 인간은 모방하는 것과 모방된 것을 즐거워한다고 주장했다.
손쉬운 디지털 사진이야말로 자신과 타인을 가장 원본에 가깝게 재현해 주는 도구이다. 한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즐기는 문화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단지 도를 지나치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 류미월(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사진은 세상을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어두운 면은 감추고 겉모습만 비출 때가 많다. 모처럼 떠난 길 위에서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도구에 의해 본래의 맛과 정취를 빼앗겼다면 사진기를 들이대기 전 깊이 생각해볼 문제 아닌가. 우리는 너무 과정은 간과하고 결과에만 급급한 건 아닐까. 지난겨울에는 딸이 시골 교회에 가서 변변한 사진 한 장 없는 할머니들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다가 눈물이 났단다. 한 할머니께 분을 발라드리며 얼굴을 매만지자 딸의 손을 꼭 잡고는 “이런 호사는 처음 누려본다”라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고. 사진을 찍는 일도 정성으로 담아야 소중한 의미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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