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추석이 다가오면 문득 살아생전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싫은 날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푸념을 하시곤 했다. “내가 살아온 날이 다 소설이다. 책으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은 된다.”라고. 나도 삶이 힘들어 지친 날엔 삶에 지쳐 욕으로 달랬던 어머니의 구수한 욕설이 그리워진다.

이맘때가 되면 부모님께 변변한 옷이라도 더 사드릴 걸 하고, 지금은 계시지 않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후회가 따른다. 벌초하는 날이면 바삐 살다 모이는 형제. 조카들. 못난이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서럽다가 반갑다더니 가만히 형제들을 들여다보니 고만고만하다. 산소에 무성한 풀을 예초기로 자르고 갈퀴로 시원스레 마무리하고 술 한 잔을 올리고 나면 덥수룩한 내 머리카락을 손질한 것처럼 시원하다. 말끔해진 산소 앞에서 식구들의 굴곡진 지난날들을 떠올리다가 소설 한편을 읽는 착각에 빠졌다.

어떤 시인은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봉분 하나 나타난다. 인기척이다. 여보, 라는 봉긋한 입술로...”라고 노래한다.
선산에 나란히 누운 아버지·어머니 합장묘 앞에 서면 살아생전에 살갑게 대하지 못 했던 그리운 말들이 메마른 입술로 말하는 것 같다. 이미 살도 썩고 뼈도 삭은 몸 곁에 웅크린 빈 소주병에서 나는 소리처럼 쓸쓸하게 말이다.

묘 앞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 대신 휑한 바람만 허전함을 더한다.  고작 벌초만 해드렸다고 가슴속 깊은 한이 용서라도 되는 걸까. 한때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우며 대들고 마음에 상처를 냈던 일. 내 엄마인데도 병이 깊어진 줄도 모르는 딸이었다. 어머니가 폐암 판정을 받고는 70일 만에 거짓말처럼 명을 달리하신 거다. 어머니 앞에 서니 울컥 사죄하고 싶어진다.

시인 고은 의 「그 꽃」 이란 시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짧은 문장으로 삶을 간파한다. 시는 함축성이 생명이다. 문장을 산문처럼 늘어놓지 않고도 몇 마디 문장으로 핵심을 관통하며 울림을 준다. 소설은 어찌 보면 사람 사는 시시콜콜한 작은 얘기들이다.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벌초를 끝내고 산소 앞에 앉아 고인을 추모하다가 산소가 문득 소설책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켜켜로 쌓여있는 바로 ‘당신’이라는 제목의 소설 말이다. 해마다 비바람을 맞고 낡아진 책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한 때 당신과 함께 해서 따스했던 가을날도. 즐거웠던 웃음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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