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휴가철이면 무조건 떠나는 게 어떤 법칙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휴가철이 지나고 나니 떠나지 않아도 좋았다. 길을 나서면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보내는지에 따라 즐거울 때도 있지만 불편함도 따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캠핑 용품이 나오기 무섭게 사들이는 남편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친구가 있다. 그 집 옥상에는 파라솔과 비치 의자 등 올망졸망 야외 레저용품들이 가득하다. 자랑삼아 친구를 불러놓고 불평을 하는 그 애가 내심 부러울 때가 많았다.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 이번 휴가는 어느 계곡으로 다녀왔냐고 묻자 시큰둥하다. “가뭄에 계곡은 뭘... 집에서 겨우 영화 한 편 봤다”라며 캠핑 용품은 창고에 잠자고 있는지 오래됐단다.

그 친구가 한 번은 새로 산 용품들을 체험해 보고 싶은 동서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와선 부부싸움을 했단다. 폼 나는 명품 백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윗사람과,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는 아랫사람 때문에 배가 아팠던 거다. 함께 떠나고 함께 한다고 다 좋은 일일까.
정해진 살림살이에 엄두를 못 내다가 휴가를 안 간 대신 욕실을 산뜻한 타일로 개조한 이웃을 보았다. 선택의 잘못으로 불쾌한 추억으로 남는 휴가보다는 차라리 욕실을 드나들 때마다 느끼는 만족감은 클 것이다. 불행하게도 여행길에서 접촉사고가 만일 내 경우가 된다면 설렘은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으로 바뀌고 만다.

몸도 연식이 오래돼서 일까. 이제는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가득 챙겨서 떠나는 휴가는 반갑지 않다. 막상 어디론가 떠나도 강박처럼 정해진 행선지로 바삐 움직이고 챙기다 보면 휴가를 왜 왔나 싶을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경쟁 심리 속에 무엇이든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마음이 작용해서일까.
남들이 산으로 바다로 떠난 도심에 남아 근처 천변을 걷다가 흰 왜가리와 눈이 마주치면 행복한 마음이 든다. 바람 따라 걷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문득 포근할 때가 있다. 나를 내려놓는 편안한 시간을 가져보는 일.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문득 자신의 좌표를 느껴보는 일. 자신의 가장 그늘진 부분을 꺼내 살갑게 소통하며 마주하는 일. 그것 또한 진정한 용기이리라. 우리 집 다음 휴가 계획은 “각자 자유를 만끽하라”로 명해볼까 한다. 잠시를 쉬더라도 제대로 충전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는 일. 휴가의 패턴도 진화하고 있는 걸까. 이것저것 귀찮아진 내 이기심이 작용한 걸까. 때론 떠나지 않고 즐겨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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