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같은 여자라도 고모 다르고 이모 다르다. 남매와 자매의 차이다. 낯선 곳에서 가끔 느끼는 건 이모와 함께 온 이들은 있지만 고모와 함께 온 구성원은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이모 중심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시가에는 어떤 결점을 보이기 싫어하다 보니 자연 긴장감을 갖고 대하게 되고 친정 쪽은 아무래도 편한 마음이니. 친정은 친하고 정이 가지만 시가는 시간만 가라고 바라는 쪽이 된다. 미묘한 얽힘으로 심사가 불편한 때면 차라리 혼자 살거나 여자끼리만 살면 안 되나, 결혼도 없는 여자 나라를 꿈꿀 때도 있었다.

여하튼 한쪽으로 쏠림 현상은 불안정하다. 나 또한 고모이고 이모이기 때문에.
몇 해 전 제주에 갔을 때다. 어린애도 아닌 50대 중년 부인이 이모 두 분을 모시고 왔다. 약간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정작 어머니는 연로해서 집에 계시고 이모님을 모시고 오다니. 조카와 여행을 하는 이모님들이 후덕해 보이기도 했다.

한때 졸업식 하는 날이면 고모, 이모들이 꽃다발 들고 함께 하는 풍경이 흔했다. 고모 손잡고 짜장면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사는 게 바빠져서인지 요즘 졸업식장은 부모만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들의 입김이 커져서 일까.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부계 쪽의 존재가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고모라는 호칭이 섭섭할 때가 많다는 친구도 있다. “조카들 어릴 때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요즘엔 전화도 없고 배신감에 완전 왕따 당한 기분이야”

어미 모(母)가 들어가는 관계는 어쨌든 어머니와 비슷한 서열이다. 이모, 고모, 외숙모, 당숙모... 가끔은 고모와 함께 하면 어떨까.
고모의 손을 덥석 잡고 대화하다 보면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며 울컥하기도 하고 옛 추억의 공유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폭이 더욱 깊어질 게다. 거울을 보고 유심히 얼굴을 살펴보자. 엄마만 닮았는가. 분명 아버지의 염기서열도 반반이라고 아우성 중이다. 세상의 반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모와 이모다.

살다가 힘들 때나 병상에서 사경을 헤맬 때면 나도 모르게 “엄마, 엄마!”를 찾다가도 더 큰 힘에 의지하고 싶을 때 찾는 건 아버지이다. 종교인이 아닐지라도.
아버지라는 나무에 딸린 가지도 튼실해서 잎들도 무성하게 찰랑거렸으면. 이모만큼 ‘고모’라는 호칭이 인기를 회복하는 날은 언제쯤일까? 그렇다고 조물주께 엄마 형제는 모두 남자로만 해달라고 미리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