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영화 ‘베테랑’을 보고 나오는 뒷맛이 개운하다. 배우 황정민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가 분(扮)한 서도철 형사의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고 그랬지?” 라며 거대한 갑(甲)에 맞짱 뜨며 한방 날리는 정의감이 찜통더위에 한줄기 소나기처럼 카타르시스를 줘서이기도 하다. 오만과 부조리가 들끓는 기득권층의 무례함 앞에 양심의 칼날로 도려내며 항거하는 모습에서 내가 하지 못하는 시원한 정서적 해갈이 컸던 거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 라고 맥아더 장군이 말했듯이 용맹스러운 모습이 맥을 잇는 듯했다.
어느 분야에서건 베테랑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초밥의 달인은 손을 베이고 숱한 상처와 실패 끝에 초밥 하나하나에 밥알의 양을 기계처럼 거의 정확한 양으로 빚는다. 유능한 비서관은 모시는 높은 분의 눈빛만 봐도 알아서 움직인다. 수차례 실수의 연속과 절망감 보이지 않는 내공의 힘이 베테랑을 만든다.

성공한 이들의 성공 요인으로는 1만 시간을 꼽지 않던가.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몰입해야 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피겨 퀸 김연아, 박지성의 혹독한 훈련. 발레리나 최태지의 화려한 의상 뒤의 기형적 발가락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름난 스타 뒤엔 각고의 시간이 그림자처럼 쌓여있다.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동료나 상사 경찰들이 서도철을 위하는 척하며 힘들게 싸우지 말고 그만 타협하고 쉽게 살라고 설득한다. 정말 그렇게 좋은 선후배였던가. 그 이면에는 어떤 대가성 이익이 도사린 떳떳하지 못한 비굴함이 숨어서다. 서도철이 빛나는 이유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정의를 위해 파헤치는 민중의 지팡이 노릇을 해서일 것이다. 현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상황이라 그랬을까. 영화에서 느껴지는 대리만족감이 더 크게 다가온 까닭은.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아무리 물신주의(物神主意)가 만연된 사회라지만 씁쓸한 장면들을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자주 접하지 않는가. 버려지는 양심 앞에 부끄러울 일이다. 초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초보이기에 호기심과 몰입도가 높고 겁 없이 굴 때도 있다. 꿈 많고 풋풋했던 신혼의 초보 시절도 있었다. 베테랑은 평온할 때는 드러나지 않다가 비상시에 고도의 노하우로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지금은 힘들어도 묵묵히 소명의식을 갖고 자기 분야에서 베테랑으로 거듭 나는 일. 영화 ‘베테랑’이 주는 통쾌한 웃음 뒤의 메시지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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