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역사문화기행 ② 터키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과 ‘아흐멧 사원’

▲ 터키 이슬람교의 상징, 블루 모스크(blue mosque) 전경.

 찬란한 비잔틴문화의 최고작품 ‘소피아 성당’
이슬람 문화의 상징 ‘블루 모스크’, ‘아흐멧 사원’
6·25참전 산화한 터키군의 넋을 기리는 ‘한국공원’

비잔틴 문화의 최고 걸작품 ‘아야 소피아 성당’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아야소피아(Ayasofya) 성당은 터키문화의 다양성을 말해준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이 동로마제국의 수도일 당시 532년에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그리스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수차례와 화재, 전쟁, 지진 등으로 파괴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정복자 마호메트 2세가 성당을 돌아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서 모자이크 벽화를 파괴하지 말고  대신 그곳을 석회를 발라 가리게 했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소피아성당 주변에 첨탑을 세우고, 성당 안에 카페트를 깔고 금요 기도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 후 1934년 터키공화국이 설립된 후 석회를 벗겨내고 성당은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살아남게 됐다. 1500년이 넘는 비잔틴 문화의 찬란한 건축예술을 볼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스교 정교의 진수를 보여주는 모자이크 벽화들…
하기아 소피아(그리스어로 거룩한 지혜의 뜻)는 역사상 가장 기독교적인 성당으로 타 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이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거대한 벽기둥, 55.6m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돔, 금빛으로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 등 당시의 건축가, 예술가들이 플라톤의 기하학과 신학을 합쳐 지은 찬란한 비잔틴문화의 최고작품으로, 말 그대로 ‘거룩한 지혜’를 보는 것 같다.

내랑에서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9개가 있는데, 가운데 문은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돔의 한 가운데는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예수의 그림이 있다.
2층 갤러리 끝에는 성모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과 양 옆에 황제 콤네노스와 그의 부인이 그려져 있고, 본당 쪽 뒤편 벽면에는 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모습 보인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교회 건축물 중 하나인 아야소피아 성당은 웅장한 외관, 커다란 돔과 첨탑으로 이루어진 모습 등 마치 동화 속 궁전을 연상케 해 관광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비잔틴 건축의 전형인 아야소피아 성당, 신과 인간이 빚은 최고의 명작이라 찬사를 보낸다.

블루 모스크, 이슬람의 상징 술탄 아흐멧 사원
모스크(Mosque)는 아랍어 ‘마스지도’에서 유래했으며 아랍어로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곳’이란 뜻이라 한다.
이 사원은 아야소피아 성당과 인접하고 있으며 이 성당보다 더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으로 지으라는 술탄 마흐메트 1세의 명에 의해 건축가 메흐메트 아아에 의해 1616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블루 모스크는 내부 장식에 쓰인 타일이 모두 푸른색 기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로 불러지고 있다.

이 사원은 첨탑(미너렛)이 6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야사에 의하면 황제가 이 첨탑을 모두 금으로 만들라고 명령했다 한다. 그런데 터키어의 금은 6이라는 숫자의 발음과 비슷해서 건축가는 잘못 알아듣고 첨탑 6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원은 신성한 곳으로, 들어 올 때 반드시 손발을 씻는 세정용 수도꼭지가 달려 있으며 사원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교회나 힌두사원은 신성한 ‘신의 집’으로 생각하지만 이슬람교의 모스크는 단지 ‘공동의 기도 의식을 위한 자유 공간’이란 뜻이 더 강하다.

이슬람 문화에서 여자는 억울한 대접을 받고 살아 온 것 같다. 사원 내 기도하는 공간에는 여성들이 접근할 수 도 없고 이층의 별도의 공간에서 기도를 해야만 한다. 관광객 누구나 예외 없이 신발을 벗고 여자는 반드시 히잡을 써야만 내부에 입장할 수 있다. 이슬람 율법에 여성은 얼굴마저 가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더운 여름 날씨에 까만 히잡에 까만 선그라스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슬람 여성을 어떤 모습으로 설명해야 할까 궁금해진다.
이슬람 여성들이여! 히잡을 벗고 천사가 되어라!

‘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가 잠든 수도 앙카라
미다스의 손길이 닿은 듯 신비하고 화려한 도시 이스탄불을 뒤로 하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향해 달려간다.
앙카라로 향하는 6시간의 장거리 여행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힘든 줄 모르고 갈 수 있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터키공화국이 탄생됐다. 그는 계급제, 일부다처제 폐지, 남녀 평등교육  등 각종 개혁정책을 시행하면서 ‘터키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국민적 영웅이 됐다. 군인출신인 아타는 1차세계대전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우고 청년장교들과 힘을 모아 오스만제국을 무혈로 장악한 후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고 오늘의 번영을 이뤄 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산화한 700여명의 터키군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한국공원 안에는 불국사 다보탑 모형의 참전 기념비가 눈에 띈다.

앙카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리는 또다시 터키의 신이 빚은 정원 카파도키아로 향해 장장 300km를 달려간다.
길가에 펼쳐지는 풍광은 시선을 압도한다. 터키의 최대의 소금 공급처인 신비스러운 소금호수,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 아래 양떼들이 푸른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이 달리는 차창 밖으로 한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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