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20)

▲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명장 홀로페르네스는 와인에 취해서 아리따운 이스라엘 여인 유딧의 품에서 잠들었다가 그녀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독약마저도 향기롭게 하는 와인 ‘샤또 마고’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와인은 대부분은 로맨틱하거나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재로 이용되지만 가끔은 안타까움과 비애의 상징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단연 죽음과 연결된 장면에 등장하는 와인이 아닐까 싶다.  
죽음이란 삶이 다하는 것이므로 어찌 보면 그 실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생과 더불어 생명체가 겪는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의 포인트라는 점에서 문학에서 가장 깊게 다뤄지는 주제다. 바로 그 죽음의 순간에 등장하는 와인은 우리에게 가장 깊게 각인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명장 홀로페르네스는 와인에 취해 아리따운 이스라엘 여인 유딧의 품에서 잠들었다가 그녀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그 속에 등장하는 와인이 바빌론에서 가져간 것이었는지 전장인 이스라엘 현지에서 양조된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목숨을 걸고 마실 만큼 매력적인 맛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간혹 ‘바르칸(Barkan)’이나, ‘야르덴(Yarden)’과 같은 현대의 이스라엘 와인을 만날 때면 2500년 전 와인에 취해 목숨을 잃은 홀로페르네스를 떠올리며 필자는 이렇게 다짐한다. “과음을 자제하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개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레이먼드 카버(R. Carver)의 단편소설 ‘심부름(Errand)’은 자신의 문학에 큰 영향을 준 극작가 안톤체홉(Anton Chekhov)의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작품 속에서 쉬뵐러 박사는 체홉에게 남은 시간이 불과 몇 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최고급 샴페인을 주문한다. 쉬뵐러 박사는 샴페인 특유의 폭발음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신경 쓰면서 능숙한 솜씨로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를 따고 체홉과 올가, 자신의 잔에 와인을 따른다. 체홉은 남아있는 마지막 기력을 다 짜내어 “샴페인이라. 정말 오랜만이로군.” 하며 샴페인을 마신 후 돌아누워 눈을 감고,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숨을 멎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에트라는 샴페인은 아마도 ‘모엣샹동(MOET&CHANDON)’사의 샴페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 대한 배려로 선택한 것이 샴페인이었다니 훌륭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마신 후 한숨을 내쉬었다니 망자도 온전히 샴페인의 향을 음미하고 간 것이리라.
지난해 세상을 뜬 대중소설가 와타나베 준이치는 원래 의대를 졸업하고 정형외과 강사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런 이력 때문이었을까. 데뷔작인 ‘심장이식’으로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락원’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에는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자주 나왔던 것 같다.

소설 ‘실락원’에서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받은 중년남녀의 격정적인 불륜관계의 종착역으로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결말은 와인이 등장하는 장면 중 가장 슬프고도 에로틱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주인공인 ‘구기’와 ‘린꼬’는 최고급 와인 ‘샤또 마고(Chateau Margaux)’ 한잔에 청산가리를 넣고 자살을 준비한다. 격렬한 섹스 후 쾌락이 채 가시기도 전, 한 몸인 상태로 구기는 독이 든 와인을 한 모금 삼키고 입속에 남은 와인을 린꼬의 입속으로 흘려 넣는다. 그대로 묻어 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그들은 그렇게 영원히 하나가 된다. 1997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당시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던 이 소설 때문에 원래도 유명했던 ‘샤또 마고’는 더욱 유명한 와인이 되었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소설가 헤밍웨이도 이 와인을 너무나 좋아해서 손녀딸의 이름을 마고 헤밍웨이라고 지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샤또 마고의 이야기를 쫓다보면 우연인지 몰라도 ‘자살’이라는 단어와 자주 만나게 된다. 실낙원의 주인공들 뿐 아니라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마고 헤밍웨이도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국내에서 백만원을 호가하는 가격 때문에 쉽게 넘보기도 힘든 와인이지만, 독약마저도 향기롭게 해줄 와인이라면 한번 쯤 맛보고 싶지 않은가. 혹시 자살하게 될까 걱정돼 못 마시겠다는 분이 있다면 걱정 마시길. 사랑을 덜해서였을지는 몰라도 필자와 샤또 마고를 나눠 마신 사람 중에는 누구도 자살한 사람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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