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여는 젊은 여성농부들 ⑥한국농수산대학교 특용작물학과 박정자 씨

▲ 박정자 씨가 사과나무 전지·전정 작업을 하고 있다.

산골 생활에 대한 동경이 만들어 낸 제2의 인생
한국농수산대학 입학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농부의 삶

▲30년만에 이룬 산골생활의 꿈= 전형적인 386세대 대학생에서 강남 엄마로 여유로운 삶을 살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 농대를 입학해 지금은 평창 산골 오지에서 홀로 메론과 마카, 삼채와 아마란스 등 8천여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산다.
듣기만 해도 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양갈래로 딴 머리, 카랑카랑한 맑은 목소리,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몸짓. 평창에서 만난 박정자(56) 씨는 시골에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참 특이한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후 설악산의 맑은 물과 야생화가 머릿속에 각인됐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능력있는 남편과 결혼해서 남부럽지않은 안정된 삶을 살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산골 오지 생활에 대한 동경이 떠나질 않았어요. 삶은 풍요로왔지만 마음은 점점 가난해져갔죠. 마음만 먹으면 ‘척’하며 살 수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더라구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더 이상 꿈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박 씨는 큰 결심을 했다.
“행복은 결코 물질이나 조건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란 걸 깨달았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해도 도시에서는 원초적인 허전함은 메울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박 씨는 혈혈단신 시골로 떠나왔다.

▲농촌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2003년 홀로 도시를 떠나온 그녀는 전북 남원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농촌에서 살고는 싶었지만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막상 농촌에 들어와보니 뭔지 모를 미안함과 책임감이 생기더라구요. 도시에 살 때는 말로만 들었지 농촌이 이 정도로 피폐할 줄은 몰랐거든요. 실컷 가르쳐놓으면 도시로들 나가버리니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어 건설적이고 도약적인 발전은 꿈도 꾸지 못하겠더라구요.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만 할 줄 알았지 정작 농촌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나만 편하게 살았다는 미안함과 ‘내가 농촌을 위해 뭔가 할 수 있겠구나’라는 책임감에 농사를 지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박 씨는 2005년 영월의 국유지를 임대해 본격적인 농사를 짓기에 앞서 한국농업대학(현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했다.

“귀농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지식과 공동체 생활 등만 가르치지 전문적인 농업교육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학교에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죠.”
그래도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텐데.
“저와 함께 입학한 학생들이 둘째아들과 동갑이었어요. 다들 내 자식같았지만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른 흉내’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 행사에 참여했어요. 아이들의 실수가 보여도 말없이 지켜보다보니 학생들이 먼저 다가오더군요.”

부모님의 영농기반을 물려받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박 씨는 주중에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방학은 물론 주말이면 영월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 ‘스파르타’식 스케쥴을 소화해야 했다.  
“제가 심한 아침형 인간이예요. 아침일찍 일어나 아침운동을 하고 다른 학생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쉴동안 저는 혼자 실습실에 나가 하루를 시작했죠. 주말에는 농장을 가꾸고 평소 관심이 많던 발효액도 만들어 판매하고 일요일 저녁에는 학교로 돌아오는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피곤하기는 커녕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어요.”
고된 생활이었지만 박 씨는 배움에 대한 즐거움에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다.

▲강남아줌마, 진짜 농부되다= 앞만보고 쉼없이 달려온 덕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제2의 삶도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다.
귀농한 지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마카와 삼채 등 농사정보에 대한 문의가 들어올 정도로 진짜 ‘농사꾼’이 다됐다.
“도시에 살때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꾸미고 튀는 것 좋아하던 제가 시골생활 10년동안 로션·스킨 한번 안바르고 살았다면 아무도 안믿어요. 최근에 화장을 하려고 봤더니 화장법이 생각이 나지 않더라구요. 찍어바른 제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 없구요. 아~ 내가 이제 진짜 농사꾼이 다 됐나보다 싶었죠.”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그녀이기에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계획이 없다’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시골에서 살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평생의 꿈을 이뤘기 때문에 먼 계획은 세우질 않아요. 땅은 뿌린만큼 거둔다는 정직함을 가르쳐주죠. 현재에 몰두하며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한다면 땅이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지 않겠어요? 최소 3~4년간은 지금의 농장을 가꾸는데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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