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⑪

▲ 디캔딩(사진제공).

디캔터의 위력은?
와인의 침전물을 제거하고
산소와의 접촉을 돕는다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 가끔 등장하는 디캔터(Decanter)라는 유리병이 있다. 디캔터라는 말을 백과사전에 찾아보면 '디캔터: 포도주 등을 따르는 데 쓰이는 마개 있는 유리 용기' 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그 설명만으로는 도대체 와인을 따르는데 왜 이런 유리병이 따로 필요한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어렵기에 디캔터의 쓰임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라면 와인잔과 더불어 사진과 같은 디캔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쓰임새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제품이 있으나 기본적인 기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기능은 와인 속의 침전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오래된 와인에는 모래알 같은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와인 속에 함유된 주석산이 무기질과 결합해 만들어진 주석산염이다. 와인속의 다이아몬드 또는 루비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주석산염은 원래 무색, 무미, 무취의 결정체인데 화이트와인에서는 무색투명하게 나타나고 레드와인에서는 붉은 색으로 나타난다. 별다른 맛이나 몸에 해로운 점은 없지만 와인의 미관이나 식감을 해칠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와인을 마시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좋다.

가장 일반적인 제거방법으로 디캔팅(Decanting)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와인 병을 흔들리지 않게 오픈한 다음, 가라앉은 침전물이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디캔터 속으로 옮겨 담는 작업을 말한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소믈리에들이 실력을 뽐내려고 하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화려한 기술보다는 조심스러운 자세가 요구된다.
디캔터의 두 번째 기능은 와인과 산소의 접촉을 돕는 것이다. 에어레이션(Aeration) 또는 브리딩(Breathing)이라 부르는 이 작용은 와인이 디캔터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에서 산소와 접촉하고, 디캔터 속의 넓은 공간 때문에 더 쉽게 산화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와인이 산화되면 품질이 떨어진다고 알고 있지만, 이와 같이 마시기 직전에 일어나는 약간의 산소접촉은 거친 와인의 맛을 부드럽게 만들고 복합적인 풍미가 잘 발산되도록 도와준다.

와인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간혹 디캔터의 사용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 “오래된 와인은 꼭 디캔팅을 해야 풍미가 좋아지고 부드러워진다.”와 같은 말은 디캔팅과 에어레이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해외 와인서적의 오역(誤譯)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쳐 써보면 “오래된 와인은 침전물이 많을 수 있으므로 디캔팅하여 제거하는 것이 좋으며, 젊고 싱싱한 와인은 거친 탄닌을 부드럽게 하고 복합적인 향미를 발산하도록 산소와 접촉시켜 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두 경우 모두 와인을 옮겨 담는 것은 같지만 그 목적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래된 와인은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표면적이 좁은 디캔터에 굵은 줄기로 부드럽게 옮기고, 젊은 와인은 넓은 디캔터에 가늘고 긴 줄기로 떨어뜨려 산소와의 접촉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적절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스파클링이 아닌 스틸와인(일반와인)에 탄산가스가 남아서 톡 쏘는 느낌이 난다면 수직으로 거칠게 쏟아 넣어 탄산가스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부드럽게 만들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디캔터는 와인의 느낌을 가지각색으로 바꾸어주는 마법의 와인병이다. 물론 디캔터의 효용을 둘러싼 논쟁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와인애호가는 소믈리에의 멋들어진 디캔팅 솜씨를 감상하듯, 그런 논쟁마저도 하나의 재미로 생각하고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아마 이 글을 읽고 멋진 디캔터를 장만하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시장에는 수 만원에서부터 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나와 있는데, 기능도 기능이지만 모양까지 예뻐서 장식용으로도 최고이다. 큰 마음먹고 최고급으로 구입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비싼 디캔터에 담는다고 와인이 맛있게 변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법 같은 효과는 디캔터가 아니라 디캔팅하는 사람의 이해력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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