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⑧

“당신에게 와인은 무엇입니까?”
와인 수업의 첫 시간에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답들을 쏟아낸다.
즐거움, 기다림, 분위기, 어려운 술, 비싼 술 등으로 와인을 표현하는가 하면 숙취, 중독, 도전 등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대답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들어왔던 수많은 답변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와인은 언어다” 라는 대답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와인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장벽은 아마도 외국어일 것이다. 말만 통한다면 세상 어디든 못 갈 곳이 있겠는가. 하지만 막상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볼수록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농담 같지만 말만으로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 사람끼리는 싸울 일이 없어야한다. 우리가 진실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꽤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음악, 예술, 학문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인류가 가진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바로 소통을 위한 언어들이다.

A과장은 오늘 같은 휴일이면 예외 없이 골프장을 찾는 골프마니아이다. 해외에서 중요한 손님이 왔다. A과장은 시원치 않은 영어 실력 때문에 긴장했지만, 골프를 좋아한다는 손님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두 사람은 골프장에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 후에도 그 손님은 올 때마다 A과장부터 찾는다.
B대리는 시간만 나면 기원에 가는 바둑의 고수다. 주요 거래처의 사장님이 바둑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식사 후에 한판 두자는 제의를 받았다. B대리의 기분은 어떤 상태일까. 바둑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B대리는 이미 자신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긴 시간을 예약한 것이다.
자! 그럼 와인마니아였던 필자는 어땠을까? 어느 와인동호회 모임에 나갔을 때, 와인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모임에 나왔다는 청순가련한 아가씨를 발견했다. 몇몇 경쟁자가 있었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을 무기로 모두를 물리치고, 사탕발림이 아니라 와인발림으로 그 아가씨와의 데이트를 성공시킨다. 나름대로 노력한 끝에 결국 그 여자를 집으로 들여앉히는데 성공했다. 아기도 셋이나 낳고 알콩달콩 즐겁게 살고 있다. 이만하면 꽤 성공적인 스토리 아닌가. 청순가련했던 그 여자가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이처럼 무언가에 심취한 사람은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멋진 언어를 가진 셈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 최고의 매력을 발산하게 된다. 그 언어가 유창할수록 대화는 순조로우며 이러한 소통에는 묘한 쾌감이 동반된다.

사람과의 소통을 도와주는 언어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언어들 중에서 우리가 유독 와인에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와인 자체가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을 만큼 종류가 다양한 탓에 우리는 매번 새로운 와인을 만날 수 있고, 그로 인해 시작된 이야기는 즐거운 식사시간을 예고한다. 좋은 와인 한 모금으로 시작된 식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즐겁다.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새롭게 변하는 와인의 풍미는 끊임없는 감탄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며, 새롭게 등장하는 와인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된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누군가와의 만남은 늘 우리를 설레게 하고 긴장시킨다. 그러나 와인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테이블을 무대로 와인이라는 배우가 펼치는 멋진 공연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배우가 당신이 잘 아는 친구라는 점 하나만으로 당신은 객석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름은 샤스-스플린 입니다.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그 뜻처럼 따스한 이 친구의 마음을 오늘은 여러분께도 나누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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