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기행 - 명인·명장열전

 ■ 서울 인사동 한정식집 ‘두레’ 이숙희 대표

한식은 곧 우리문화를 파는 것
“와인에 김치안주가 왜 이상한가요?”

‘막 숙성되기 시작한 갓김치의 향기를 지닌 유채김치의 식감은 참으로 촉촉하다. 두부로 속을 채운 오징어 순대나 홍어를 족편 모양으로 만들어 초겨자 소스를 곁들인 홍어편도 훌륭하게 개발된 요리이다. 백김치와 두부로 소를 넣은 메밀전병은 온당하게 절제된 맛의 품위가 느껴진다.… 염분이 많아 덜 먹으려 해도 역시 맛있는 젓갈과 장아찌는 밥 도둑이다. 이 집의 곰삭은 어리굴젓, 멍게젓이 그렇고 산초나 죽순 장아찌는 가정에서는 흔히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맛과 품격을 갖춘 특별한 식당은 일반인의 대중적 취향을 따라가지 않는다. 두레는 그런 기준에 비교적 가까운 한식당이다.’
음식평론가 K모씨가 두레의 음식을 위와같이 평하면서 별점 4개 중 3개를 주었다. 간단한 평이지만 두레 음식을 간단 명료하게 짚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이야 맛있으면 그만이지 뭔 쓰잘 데 없는 격조(格調)타령인가 싶겠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주인장인 이숙희 대표(55)의 곡절(曲折) 많은 인생살이에서 걸러진 곧은 소신이기도 하지만….

서른, ‘두레’잔치는 시작되고…
한정식집 두레는 우리 전통문화를 기웃거리는 외국관광객들이나 우리나라 문화계 인사들에게는 ‘인사동의 아이콘(icon)’으로 각인돼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나름대로 하나하나 독특한 맛을 지닌 음식도 음식이려니와 이숙희 대표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감성과 취향이 더해진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애초 이대표가 밥집과 숙명같은 인연을 맺은 건 여고졸업 후에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가난 때문이었다. 경남 밀양의 대부호(大富豪)였던 아버지의 몰락과 한식점 ‘영락관’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요절… 이 대표가 밀성여고를 졸업한 후 극단 생활을 하던 스물한살 때의 일이다. 이 대표 자매는 취직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이 생면부지의 낯선 땅에서 두 자매는 처절하게 거리에 나앉았다. 두 자매는 구멍 뚫린 판잣집 천장으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눈물로 밤을 지새곤 했다. 그는 입술을 곱씹으며 다짐했다. ‘기어코 돈을 벌어 동생과 함께 비 안맞고 살 수 있는 전셋방이라도 얻어야 겠다.’
이 대표는 닥치는 대로 거리에서 정신없이 일했다고 했다. 전통찻집, 남대문·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어다 신발, 액세서리와 함께 팔던 양품점을 6년 동안 했다는 것. 그때 ‘힘들어 못하겠다’는 아는 선배의 40평짜리 허름한 초가 청국장집을 인수했다. 이때가 1988년, 두레의 첫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요절한 어머니의 영향이기도 했지만 이 대표의 어렸을 적 꿈은 꽤 괜찮은 요정을 차리는 것이었다. 다들 젊은애가 미쳤다고 일소에 부쳤지만, 그는 ‘살아있는 선비정신, 풍류를 아는 기생문화를 요정을 통해 이어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엔 청국장·장국밥·파전·홍어찜·두부김치·낚지볶음만 만들다가 차츰 한식에 눈을 뜨기 시작해 이때부터 20년 넘게 몸사리지 않고 내로라 하는 전국의 음식명인들을 찾아다니며 음식공부를 했다. 전라도 땅에서 호가 난 양영숙이란 분께는 장아찌를, 개성할머니 라는 80대 할머니께는 개성편수·보쌈김치·개성갱단·주악 등 개성음식을 전수받았다. 뿐이랴, 관광공사·요리협회에서는 정과(正果)를 배우고, 떡 박물관장에게 5년 넘게 떡을 익혔으며, 이름난 절을 찾아다니며 사찰음식도 배웠다.
게다가 짬짬이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세워 가야금은 18년, 안숙선·조통달 명창에게는 판소리를 사사받아 지금도 하루 2시간씩은 짬을 내 연습을 한다고 했다. 이 대표 왈- ‘한식이 곧 풍류’라는 것.

▲ 두레 한정식 한상.
한식의 메인은 밑반찬과 별미김치
이 대표는 밑반찬과 김치에 유독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한식의 기본은 밑반찬이고, 밑반찬이 맛있으려면 간장·된장·고추장·물·소금이 중요한데 특히 소금은 생산지에서 직접 사다가 창고에 쌓아놓고 5~10년씩 묵혀가며 간수를 빼낸다는 것. 4년여 전엔 소금창고 지으려고 경기도 이천에 땅 5000평 정도를 사놨다고 귀띔했다.
밑반찬과 더불어 한식의 메인은 늘 김치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왜?- 가장 한국적인 맛이니까.’ 이 대표는 김치를 가장 맛있게 담그는 비법을 ‘온도’에서 찾는다. 온도는 김장철의 바깥기온, 아니면 냉장고 냉장실의 온도 정도로 차가워야 아삭아삭한 식감과 제맛을 살릴 수 있다고 일러줬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두레의 한정식에 곁들이는 김치는 김치 보시기를 큰 접시에 올려놓고 그 보시기 주변을 얼음으로 채워 시원하게 먹을 수 있게 한다.
이 대표는 지난 2006년 열렸던 서울 국제요리경연대회 향토음식 경상도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나름의 경지를 개척하고 있지만, 그가 두레 밥상의 정점으로 찍는 것은 바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별미김치다. 그래서 김치 하나에도 품격을 입히는 그의 뚝심이 별스러울 게 없다.
이제는 40여평짜리 초가누옥이 100여평의 공간으로 늘었고, 외국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우리 전통 한옥체험과 한식체험, 그리고 그 맛과 멋을 일러주기 위해 북촌 한옥마을에 ‘취운정(翠雲亭)’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같이 운영하고 있다.
그는 당당히 말한다. ‘와인 안주로 김치가 왜 이상한가요? 화이트 와인에는 맵지 않은 백김치가, 레드 와인에는 매운 김치가 제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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