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가곡 <보리밭>의 노랫말이다. 이맘 때 고향집 앞 보리원 들녘의 보리밭은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서늘해 지는 초록빛 바다였다. 뻐꾸기 울음에 나른해 지는 한낮 땡볕을 몰아가듯 들바람에 파도처럼 쏴아~ 하고 쓸리어 갔다가 밀려오며 일렁이는 청보리밭에선 종달이가 시때 없이 푸드득 까마득히 솟구쳐 오르며 하늘을 쪼아댔다.
이렇게 보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양을 옛사람들은 ‘맥랑(麥浪)’이라 했고, 보리가 익을 무렵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씨를 ‘맥량(麥凉)’이라고 했다.
‘보리밭에 서렸던/ 아지랑이 영신(靈神)들이 지금은/ 하늘에서 얼굴만 내어 밀고/ 군종(群鐘)이 울리는 음악의 잔치가 되어/ 고운 갈매(짙은 초록색)의 하늘을/ 포롱/ 포롱/ 포롱/ 날고 있다./ 흐르고 있다.’
박남수 시인의 <종달새>란 시다. 처럼 어렸을 적 보리밭의 기억은 종달새와 검정 깜부기, 보리피리와 문둥이가 전부였다.
십리가 조금 안되는 ‘국민학교’ 하학길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끌까끌하고 어석거리는 보리밭 이랑을 헤집어 메추라기 알 같은 종달새둥지의 알을 무슨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빈 도시락통에 주워담았다. 그리곤 흑수병(黑穗病)으로 이삭이 까맣게 된 깜부기를 얼굴에 바르고 ‘검둥이’ 흉내를 내며 여자친구들을 놀래키는가 하면, 통통한 보리 줄기를 쑤욱 뽑아 밑둥 한마디를 면도칼로 베어 보리피리를 만들어 삐이~삐이 불어대곤 했다. 또한 그 무렵, 보리밭에선 문둥이가 숨어있다가 어린 여자아이를 잡아 간을 빼어먹는다는 괴담이 흘러다녀 보리밭 앞에선 신발을 벗어 두 손에 움켜쥐고 죽을 힘을 다해 내달렸다.
사방이 온통 논이어서 지천으로 널린 게 쌀이었으니, 궁벽한 시골태생 어른들의 ‘소시(少時) 적 보리고개’ 얘기는 먼 남의 나라 얘기처럼만 들렸다. 보리가 익는 보릿가을[麥秋]이 오기 전에 곡식이 바닥 나 풋보리순을 베어다 쪄서 쑨 죽인 청맥죽(靑麥粥)을 먹었단 얘긴 더욱이나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이따금 자식들의 편식을 잡아줄 요량으로 한 여름 점심엔 커다란 양푼에 쌀밥과 보리밥을 절반씩 섞고, 새콤한 열무김치와 참기름을 넣고 찹쌀고추장으로 썩썩 비벼냈다. 그리고 텃밭에서 갓 딴 애호박을 넣어 끓인 된장국을 곁들였는데, 그 칼칼하고도 구수한 맛이라니… 이젠 그 열무김치 보리밥 비빔이 도시 사람들의 별식(別食)이 된 세상이 되었으니, 한마디로 ‘보리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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