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여성신문·농촌진흥청 공동기획 - 보리의 무한변신, 보릿고개 넘어 웰빙으로…

▲ 쌀 증산과 함께 2012년 보리 수매제 폐지, 한미FTA 등으로 국내 보리산업은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사진은 지난 2007년 보리 수매를 하고 있는 전남 해남의 한 농협창고.

② 보리산업의 변화

쌀 육종·재배기술 발달로 식탁에서 밀려나
산업화 이후 ‘부의 상징’ 쌀밥 선호도 이유
수매 폐지·FTA 발효…보리산업 하락 결정타


쌀과 밀 보다도 먼저 인류의 주식으로 이용되던 보리는 20세기 이후 생산량이 증가한 쌀과 밀에 안방을 내주며 잡곡의 하나로 전락했다. 국내에서도 생산량과 소비량이 급격히 하락했으며, 맥주보리 등의 수입 증가로 보리산업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2012년 보리수매제 전면 폐지와 FTA 등 시장개방 여파로 국내 보리산업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쌀 증산의 그림자…보리산업 사양길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주식인 빵에는 보리·호밀 등이 주재료였지만 재배기술, 제분기계의 발달 등으로 그 자리를 밀이 급속히 대체했다. 보리는 영양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빵을 만들었을 때의 식감, 탄력성, 제분 노력, 색택 등의 특성에서 백색 밀에 뒤처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쌀을 주식으로 하는 국가에서도 20세기 육종·재배기술 발달에 힘입어 쌀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보리산업이 사양화의 길을 걷게 된다.
가을~여름까지는 쌀, 여름~가을까지는 보리로 반분돼 왔으나 쌀 생산성의 증가로 1년 수요량을 충족하고도 남게 됐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쌀은 하얗고 부드러우며 식은 후에도 촉감과 맛이 유지될 뿐 아니라, 밥을 짓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짧아 먹는 사람과 조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쌀을 선호했던 이유도 크다.
또한 흰 빵과 흰 쌀밥은 사회적으로도 부자나 성공한 사람을 상징하다보니 산업화 이후 선호도가 급증한 것도 보리산업을 뒤로 밀어낸 한 원인이다.
오븐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중세에 흰 빵은 성직자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흰 밥은 권세와 부를 의미했다. 조선 후기부터 흰 밥과 고깃국은 부자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1980년대까지 북한의 대남방송에서도 이밥(흰 쌀밥)과 고깃국을 먹는다는 선전방송이 나올 정도였다.

보리생산량, 1970년比 6%에 불과
과거에 보리는 쌀과 함께 주식의 자리를 지켜왔으나 최근에는 쌀에 섞어먹는 잡곡을 전락했다.
쌀 생산량의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주곡 작물로 소비가 장려되던 70~80년대에는 높은 소비량에 맞춰 생산량도 높은 수준이었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쌀 증산에 따라 보리 소비량은 급감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웰빙식품으로 인식되면서 소비량은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1965년 82만6천946㏊로 정점을 찍은 보리 재배면적은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1980년대 중반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국적으로 10만㏊에도 미치지 못하게 면적이 줄어들었다. 한때 제2의 주식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보리는 최근에 잡곡으로 위상이 하락한 것이다.
2011년 현재 국내 보리 생산량은 9만6천 톤으로 1970년 159만 톤의 6%에 불과하다.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잉생산과 군대의 혼식 중단으로 재고도 누적되고 있다. 실제 보리(조곡) 재고량은 2002년 29만 톤, 2006년 30만5천 톤, 2008년 21만3천 톤, 2010년 15만9천 톤에 이르고 있다.
생산되는 보리 종류는 1970년대 겉보리, 맥주보리 중심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맥주보리의 수입과 잡곡 수요 증가로 쌀보리로 전환되는 중이다. 맥주업체에 대한 보조금으로 유지되던 맥주보리의 국내수요도 보조금 중단에 따라 수입산으로 대체된 상황이다. 맥주보리 수입액은 2001년 사상최고인 1천500만 달러를 기록한 이후 지속 감소하다가 최근 다시 상승해 2011년 900만 달러 규모다.
2011년 국내 보리 재배면적 2만9천㏊에서 60%는 쌀보리, 24%는 맥주보리, 15%는 겉보리가 생산될 정도로 보리의 위치는 잡곡으로 변화됐다.
보리수매제는 국내산 보리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재고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수매가와 수매량이 점차 낮아지다가 결국 2012년 전면 폐지됐다.
정부의 쌀보리 매입가(40㎏)는 2008년 32,880원에서 2011년 27,320원으로 내려가는 등 매년 2~6%씩 떨어졌다. 수매비율도 겉보리·쌀보리는 2002년 87%에서 매년 감소해 수매제가 폐지되기 전인 2011년에는 17%까지 하락했으며, 맥주보리는 2002년 72%에서 2011년 42%로 감소했다.
국내 보리의 식용 비율은 2001년 8만 톤에서 2009년 6만톤으로 감소했고, 식용보리 비율도 23%에서 18%로 하락했다. 결국 2012년 수매제 폐지의 영향으로 2011년 생산량은 2009년 대비 46%로 감소했다.

한미FTA 발효 후 수입 가속화
2012년 한미FTA의 발효와 수매제 폐지가 맞물리면서 국내 보리산업의 생존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겉보리는 최소시장접근(MMA)로 수입돼 전량 사료용으로 쓰이고 있지만, 다행히 쌀보리 수입은 없는 상황이다. 보리수입도 2006년부터 증가해 FTA가 발효된 시점부터 그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한미FTA 영향으로 15년간에 걸쳐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고, 관세없이 수입되는 물량(TRQ)는 2%씩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보리 수입량이 갑자기 증가해 국내 보리산업에 큰 피해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농산물 세이프 가드(ASG)를 설정한 상태다.
이 같이 날개 잃은 비행기처럼 추락을 거듭하던 국내 보리산업은 최근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며 제2의 전성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웰빙 추세와 발맞춰 보리가 건강식품으로 재조명되고, 다양한 품종 육성과 가공식품의 개발로 국민들에게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 아하!! 그렇구나~
▶추억의 혼분식= 1978년 우리나라는 쌀 자급을 이뤘지만 국민들의 근검절약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장려했던 혼분식은 지금은 일부세대에는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점심시간마다 도시락 검사를 통해 혼분식을 점검했다. 어떤 학생은 도시락 위에만 보리쌀을 군데군데 박아 선생님들을 속이기도 했다. 또한 관공서?회사에서는 수요일이나 토요일 점심이 국수로 제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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