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기행 - 명인(名人)·명장(名匠)열전 ‘천리장(千里醬)’ 식품명인 윤왕순

집안대물림 내림손맛으로 빚는 별미장…
맑은 감장에 쇠고기 섞어 조려

‘도대체 천리장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윤왕순 명인(62세)을 만나기 위해 익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건 지난 1월 중순. 윤명인이 ‘천리장’ 제조 기능보유자로서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정한 전통식품명인 제50호로 지정된 직후에 약속된 만남이었다.
윤명인의 집은 익산 시내에서 대둔산국립공원 가는 길로 40여분을 거슬러 가야 하는 완주군 경천면 경천리 105번지다. 세상은 아직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의 한복판에 있는데, 명인의 집은 대둔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친 산내골 마을 초입의 들판 한복판에 경천이라는 만경강 줄기를 끼고 나부죽이 엎드려 있었다. 마을 입구에 ‘상여 마을출입 금지’라 씌어진 낡은 표지판이 흡사 성지(聖地)의 부적처럼 내걸려 있는 것도 여느 시골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외감을 갖게 한다.
따사로운 겨울햇살을 머리에 이고 졸음에 겨운 듯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명인의 마을에서는 햇살도, 바람도, 시간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전설같은 장(醬)이 익어가는 것처럼.

‘천리를 가도 상하지 않는 장’
윤명인의 집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가득 들어온 건 담장도 없는 너른 집앞 마당에 도열하듯 줄지어 서서 어깨를 반짝이는 크고 작은 오지 장항아리들이었다. 문득 명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명인의 고단했던 세월의 흔적도 고스란히 배어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후덕스러워 보이는 윤명인 내외가 이끄는대로 내실에 들어가 앉자마자 다짜고짜로 물었다.
-천리장이 무엇인가요?
“간장과 쇠고기로 만든 장입니다. 그러나 여느 간장이 아니고 잘 숙성시켜 단맛을 내게 한 맑은 ‘감청장(甘淸醬)’이죠. 거기에 소의 우둔살, 즉 볼기짝살을 가미해 조려낸 간장 입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이내 천리장 한 종지를 내왔다. 그리고 맛 보기를 권했다. 격식 없이 냉큼 약지손가락으로 찍어 베물듯 맛을 봤다. 달착지근 하면서도 훈훈하고 깊은 맛이 흡사 쇠고기장조림의 뒷맛을 느끼게 했다. 간장 특유의 짠맛은 온데간데 없고 은근한 단내가 오래도록 입안에 맴돌았다.

-쇠고기장조림 맛이 납니다.
“쇠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농도가 걸쭉해 밑에 엑기스처럼 가라앉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저어서 드셔야 해요.”
말이 끝날 세라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윤명인의 남편 김석진(金錫辰·67)씨가 티스푼으로 저어가며 다시 맛보기를 권했다.
-그런데 왜 천리장이라고 했나요?
“천리(千里)를 가도 상하지 않는다 하여 예전부터 그리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대부가 외에는 맛볼 수 없었던 귀한 별미장이어서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만드는지 제조비법이 궁금합니다.
“제일 중요한 관건은, 좋은 콩으로 만든 메주를 잘 숙성시켜 만드는 감청간장에 있습니다. 거기에 소 볼기짝살을 말려 빻은 가루를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조려 만듭니다.”
윤명인의 입을 빌면, 고문헌(증보산림경제)의 기록을 토대로 3~4대에 걸쳐 파평윤씨가의 내림손맛으로 외할머니-친정어머니-그리고 자신에 이르기까지 전통기법으로 빚어온 천리장의 제조기법은 대략 이러하다. 우선 감청장 담그기. 직접 재배한 좋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황토방에서 사람체온(36~37℃)의 온도로 속에 곰팡이가 눈송이처럼 하얗게 피어나도록 띄운다. 이 메주에 3~5년 정도 묵혀 간수가 다 빠진 신안소금물을 더해 간장을 담근다.
이렇게 해서 잘 숙성된 감청장을 가지고 천리장을 만든다. 먼저 고문헌의 기록대로 맑은 감청장을 약한 불에 1말이 그 절반인 5되가 될 때까지 조린다. 이와는 별도로 삶은 소 볼기짝살을 지방을 제거해 내고 얇게 편육으로 저며 채반에 널어 햇볕에 말린 다음 그것을 빻아 가루를 만든다. 이 말린 소 볼기짝살 가루를 1차로 조려낸 감청간장에 넣고 무쇠솥에서 진한 죽처럼 될 때까지 약한 불로 조려 내면 천리장이 완성된다.
-원재료도 중요하지만 제조과정을 보니 여간한 정성이 아니면 어렵겠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친정어머니는 이 어려운 일을 택한 딸자식을 걱정하시다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장맛 하나로 가풍과 집안의 정신을 지켜오신 분이셨는데…”
윤명인은 그런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지켜내는 일이 곧 명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천리장 만으로는 ‘밥 먹기 힘들어’ 친정어머니가 시시때때로 똥겨주신 기법 대로 찹쌀된장과 찹쌀고추장, 육포고추장과 어육장, 한식국간장, 무염생(生)청국장, 전통메주 외에도 집주변 1~2000평 밭에서 직접 기르는 마늘, 양파와 보리차, 찰옥수수차 등의 가공품을 소포장해 ‘대둔산산내골식품’이란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옛적 친정어머니처럼 장 담그기를 ‘또하나의 자식농사’로 알고 있는 그의 옹이 진 손엔 물기 마를 날이 없다.
그런 신역(身役)이 있지만 저만치 돌아앉았던 남편이 도반이 되어주고 서울로 출가한 외동딸 지나(43세)씨가 자신의 뒤를 잇는 전수자의 길에 들어서 있어 더이상 외롭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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