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을 되살린다- 맛의 방주에 오른 토종먹거리 8가지

맛의 방주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종자나 음식을 국제적으로 등재해서 온 인류가 같이 함께 지켜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의 토종 먹거리 자원 8가지가 올해 처음 국제슬로푸드생명다양성재단 맛의 방주에 올라 화제다.
장흥 돈차, 태안 자염, 제주흑우, 제주 푸른콩장, 진주 앉은뱅이 밀, 울릉도 섬말나리, 연산 오계, 토종한우 칡소가 맛의 방주에 올랐다. 연속기획으로 하나씩 종자나 음식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와 그 특징을 알아본다.

오계는 닭의 한 품종으로 뼈가 까마귀처럼 검은 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충남 논산시연산 오계는 뼈뿐만 아니라, 깃털, 피부, 발톱, 부리, 눈까지 몸 전체가 온통 검은 것이 특징으로, 흔히 비교되는 오골계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한국 대표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에 연산오계 수탉과 암탉의 쓰임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뼈와 털이 모두 검은 오계가 가장 좋다. 눈이 검은 새는 뼈도 반드시 검으니 이것이 진짜오계’라며, 연산오계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오계의 생김새를 살펴보면 머리가 일반 닭에 비해 작고 볏은 왕관모양으로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볏의 색깔이 계절과 기온에 따라 농도가 변하는 특징이 있다. 순종 오계의 발가락은 모두 4개이고 다리에 잔털이 없다. 정강이 뒤쪽에 뾰족하게 나와 있는 것은 발가락이 아니고 ‘며느리 발톱’이다.
연산오계는 가축으로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야생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 닭처럼 가두어 놓고 집단적으로 사육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싸움을 하거나 쪼여 죽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나뭇가지 위로 쉽게 날아오르기도 하고, 사료를 먹기보다는 벌레를 잡아먹거나 풀을 뜯거나 모래를 주워 먹는 것을 좋아한다.

오계의 쓰임새
연산오계는 보신용, 약용으로 쓰인다. 연산오계와 잉어, 그리고 더덕과 수삼을 함께 넣어 달인 ‘용봉탕’은 조선시대에 임금님께 진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계에 황기와 더덕, 대추, 마른 고추, 마늘, 생강을 넣어 만든 ‘오계 황기탕’도 보신용으로 끓여 먹었다.
동의보감에도 오계가 몸을 보하는 효과가 큰 고기임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오계가 중풍에 특별한 효과를 보인다’면서 중풍으로 말이 어눌한 것과 풍한 습비를 치료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국을 끓일 때, 고기와 함께 파, 천초, 생강, 소금, 기름, 간장을 넣고 푹 삶는다며 요리방법까지 일러주고 있다.

오계의 역사성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인 제정 이달충의 문집 ‘제정집(霽亭集)’에 오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당시 큰 권세를 누리던 승려 신돈이 나이 들어 오계(烏鷄)와 백마(白馬)를 먹고 정력을 보충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東醫寶鑑)’「탕액편」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선조 이전에 사육한 것은 확실하며, 중병을 앓던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이 연산오계를 먹은 후 건강이 회복돼 이후로 충청지방의 특산품으로 해마다 오계가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약성이 좋다하여, 연계노해(連鷄魯蟹, 연산에서 나는 닭과 노성에서 나는 게)라는 사자성어가 생길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는 전주이씨 익안대군(태조의 셋째 아들)의 제14세손 이형흠(李亨欽)이 사육하여, 25대 철종임금께 진상했다는 기록(1800년대 중반)이 있으며, 거의 멸종되었던 것을 이형흠의 증손 이계순의 노력으로 일부 보존되어 현재까지 6대에 걸쳐 보존되어 오고 있다. 1980년에 “연산 화악리의 오골계”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에 등록되었다.
그러나 연산오계는 일본의 천연기념물인 오골계와는 분명히 다른 품종이기에, 문화재청은 2008년에 천연기념물 265호 연산 화악리 오계에 대한 명칭변경에 대한 심의를 벌여서 일제 강점기 때 오골계로 바뀌어 불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 28년만에 “연산오계” 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은?
연산오계는 지역에 대한 배타성이 강해 분양을 통한 사육기반 확대가 여의치 않다. 타 지역으로 나가면 점차 특성을 잃어간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로는 “계룡산 사방 30리를 벗어나면 연산오계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천연기념물에 등록될 당시인 1980년만 해도 인근 지역에는 20여 농가들이 집집마다 수십 마리 씩 연산오계를 키웠지만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연산오계 사육을 포기하는 지역 농민들이 늘어갔다. 급기야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재 지산농원에서만 홀로 지역에서 연산오계를 기르고 있다.
1992년 늘어나는 연산오계의 소비확대를 위해 전문음식점을 개업하여 현재까지 경영해오고 있으며, 직거래를 통하여 고기와 달걀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지는 탓에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란다.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한 이유는?
연산오계는 성질이 야생조류에 가까워 그만큼 기르기가 쉽지 않다. 좁은 면적에서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일반 닭처럼 기를 수가 없고, 여기에다 한두 달이면 다 자라는 개량종 닭과는 달리 적어도 6개월은 키워야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듯 연산오계는 생산성이 많이 떨어진다. 달걀 생산도 일반 산란닭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 또한 한 곳에서만 키워지고 있다 보니 전염병에도 매우 취약해서 1970년대의 돌림병 때에는 닭들이 집단 폐사하는 바람에 8마리밖에는 남지 않은 적도 있다.
현재 지산농장에서는 가업을 잇기 위하여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농장을 유지해오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아, 2001년 2만 마리까지 증식을 시켰던 오계를, 현재는 2천~3천마리 남짓한 수만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연산오계가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았던 1980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