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통신

▲ 동열모 미국주재 대기자

농촌을 사랑하고
농민을 존중하며
‘농심’의 가치를 음미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난날의 농경사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먹고 잘 사는데도 마음은 오히려 허전하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의 산업사회에서 우리 인간은 물질만능에 사로잡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정신문화가 황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문화는 그 핵심이 ‘농심’에 있다. ‘농심’이란 글자 그대로 농사짓는 농민의 마음이다. ‘농심’은 대자연을 상대로 밭을 갈아 씨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서 터득한 농민들의 값진 생활철학이며 우리의 고귀한 정신문화인 것이다. 이러한 ‘농심’이 오늘날 산업화 과정에서 빛을 잃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 살아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차제에 ‘농심’의 가치가 무엇인지 음미해 보고자 한다.

뿌린 만큼 거둔다
‘농심’은 본시 뿌린 만큼 거두려고 하니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순수하다. ‘농심’은 오로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에 이웃과 경쟁하거나 남들과 다툴 필요도 없이 묵묵히 자기 일에만 충실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농심’이 있는 곳에는 항상 여유가 있고 평화가 넘친다.
오랜 세월에 황소를 벗 삼아 농사를 짓다보니 ‘농심’은 황소를 닮아 아무리 힘든 농사일이라도 불평을 하거나 짜증내지도 않고 주어진 일을 조용히 한다. ‘농심’은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정직하게 살고자 힘쓰고, 한번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며, 한번 믿으면 변치 않고 우직하게 따른다. ‘농심’은 자기 이익보다 남을 배려하며 베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이러한 연유에서 농촌에는 항상 인정이 넘치며 포근한 분위기가 감돈다.
‘농심’은 언뜻 연약하게 보이지만 한번 작심하면 황소처럼 뚝심으로 밀어붙이며 끝까지 정성을 다한다. ‘농심’의 매력은 반질거리는 도시의 조형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억세고 투박한 농촌의 자연미에 있다
‘농심’은 본시 순수한 대자연을 상대하기 때문에 거짓이나 술수, 기만이나 가식이 없다. ‘농심’은 허영을 모르고 분수를 지키며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상생의 원칙을 우선하며, 자신에게는 염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다.
이렇게 티 없이 맑은 ‘농심’은 마음가짐 하나로 어려운 생활환경도 천국으로 만든다. ‘농심’은 두메산골 오막살이도 그곳을 편히 쉬는 나만의 안식처로 삼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나만의 교회로 섬기며, 사랑과 평화가 감도는 나만의 낙원으로 가꾸면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행복을 만들어가는 ‘농심’은 행복의 참뜻이 무엇인지 힘겨운 농사일을 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농심’은 행복의 지름길
행복은 남이 가져다주거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유형의 물체가 아니고 오직 마음가짐 하나로 스스로 만드는 무형의 ‘느낌’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제아무리 부귀를 누릴지라도 탐욕이나 이기심이 앞서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농심’에는 이러한 덕성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산업사회가 각박해지고 범죄가 기승을 부릴수록 ‘농심’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나라가 진정 문화 선진국을 지향한다면 현재와 같이 경제발전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문화의 창달에 더욱 힘써야 하며, 농촌을 사랑하고 농민을 존중하며 ‘농심’의 가치를 음미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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