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예나 지금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거나 이렇다할 직업이 없으면 살기 어려웠던 건 매한가지였다. 지금이야 수백 수천가지 직종이 있어 비비적거리기에 따라서는 최소한 끼니 굶는 일은 없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계급이 서슬퍼렇게 살아있던 전통사회에서는 정말 ‘굶기를 밥 먹듯’했다.
‘시냇가 헌집 한 채 뚝배기 같고/ 북풍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네/ 묵은 재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체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비쳐드네/ …/ 남편은 나무하러 산에 가고/ 아내는 이웃에 방아품 팔러가/ 대낮에도 사립 닫힌 그 모습 참담하다/ 점심밥은 거르고 밤에 와서 밥을 짓고/ 여름에는 삼베 적삼 겨울에는 갖옷 한벌/ 땅이나 녹아야 들냉이 싹 날테고/ 이웃집 술 익어야 지게미라도 얻어 먹지/ 지난 봄에 꾸어온 환자미(還子米, 고을 관청에서 꾸어온 쌀)가 닷말인데/ 금년도 이꼴이니 무슨 수로 산단 말인가.’
다산 정약용이 그의 저서 <목민심서> 에서 당시 한 가난한 시골마을의 모습을 사설조로 그린 것이다. 언제 불을 지폈는지도 모를 차디찬 부엌 아궁이의 묵은 재에는 눈이 덮여 있고, 언땅이 언제 녹아 들냉이 싹이 나나, 술지게미라도 얻어먹을 요량으로 주린 배를 안고 이웃집 술 익기를 기다리는 심사가 참으로 처연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딱히 정해진 직업이 없었던 <흥부전>속 흥부의 ‘알바’는, 요새 젊은이들의 ‘투잡, 쓰리 잡’은 명함도 못디밀 정도다.
‘흥부는 일월동풍 가래질 하기, 삼사월에 부침질 하기, 일등전답 무논 갈기, 이집저집 이엉엮기, 날 궂은날 멍석맺기, 시장갓에 나무베기, 술밥 먹고 말짐 싣기, 오푼 받고 마철(말의 편자) 박기, 두푼 받고 똥재 치기, 한푼 받고 비 매기, 식전이면 마당쓸기, 이웃집 물긷기, 전주감영 돈짐지기, 대구감영 태전(김 양식장)지기, 왼가지로 다하여도 굶기를 밥 먹듯 하여 살길이 없는지라…’
그때도 아닌 21세기 고도 문명시대에 세상 경기가 꽝꽝 얼어붙어 우리나라 안에만 ‘청년 백수(白手)’가 2백만이네 3백만이네 한다. 그런 세태를 일러 누군가 ‘취업빙하기(就業氷河期)’라고 했다. 70~80만년 전 저 쥐라기시대의 공룡들을 멸종시켰던 그 빙하시대의 재앙이 내리는 것인가. 84년 전 경제 대공황이 재연될 조짐인가.
지난 27일 치러진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무려 20만4천여명이 몰려 무려 74.8대1이라는 사상 최대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것인데… 낙방의 고배를 마신 ‘공룡들’은 또 어떻게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취업빙하기’를 버텨갈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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