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④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하양혈리 이공주 씨

▲ 이공주 씨(사진 오른쪽)가 남편 이인섭 씨와 벼 육묘 상황을 살펴보며 환히 웃고 있다.

농사꾼과 결혼한 전직 국가대표 핸드볼선수
대농 며느리로 농사·내조·육아 등 ‘팔방미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핸드볼팀은 비인기 종목의 냉대와 체격의 불리함을 딛고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그 때의 감동을 영화화한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국민들에게 ‘여자핸드볼=우생순’이란 공식을 각인시켰다. 당시 우생순의 주인공으로 은메달을 목에 건 선수 중에 이공주란 선수가 있었다. 그녀가 지금 코트가 아닌 농촌에서 제2의 ‘우생순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농촌총각 만나 공 대신 ‘괭이’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하양혈리 소재 양혈농원 벼 육묘장에서 이공주(33) 씨와 남편 이인섭(36) 씨를 만났다. 요즘 복지회관에서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있는 이공주 씨가 직접 구운 빵을 기자에게 건네며 반겼다.
운동선수 출신인 그녀가 농사꾼의 아내가 된 사연을 물었다.
“남편이랑 저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각자의 친구들을 따라 나온 들러리였어요. 재미있게 놀다보니 남편이랑 눈이 맞은 거죠.(웃음)”
강원도4-H연합회 부회장과 감사를 지낸 남편 이원섭 씨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한국농업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이공주 씨는 경기도 성남의 제일화재팀 선수로 활약할 때였다. 팀을 부산시설관리공단으로 옮긴 이공주 씨는 남편과 8년간 원거리 연애를 하고 2007년 결혼해 시댁인 양양으로 왔다. 농사꾼과 결혼한다니 가족과 주변에서 만류와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녀의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결혼 초기에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죠. 운동선수가 농사를 알겠어요? 남편도 연애할 때부터 농사일을 강요하지 않았고요. 게다가 강원도 사투리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 제 자신이 답답하더라고요. 운동을 했던 오기로 달려들었는데 농사일이란 게 운동과 쓰는 근육이 다르니 모판 하나 드는 일도 쉽지 않았고요.”

농사꾼에 아내·며느리·엄마 1인4역
큰애 출산 후 남편의 권유로 양양군4-H연합회에 가입하고, 2011~2012년 여부회장을 지낸 이공주 씨는 과제연찬회와 봉사활동 등을 통해 젊은 농부로서 각오를 다지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내륙이 아닌 동해안과 연접한 양양지역에서 165,000㎡(5만평)의 논농사는 엄청 큰 규모. 여기에 벼 육묘하우스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아직 이공주 씨는 농사일이 서툴기만 하다.
“시부모께서 힘들게 맨손으로 지금의 농사터전을 일궈왔죠.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 농사일을 강요하시지는 않아요. 제가 시집오기 전에 식사도 식당을 대놓고 해결하셨는데, 이를 제가 대신하는 것만 해도 모두 흡족해 하세요.”
매월 시어머니로부터 월급(?)을 받다가 지난해부터 남편이 5만평 논농사를 물려받아 직접 관리하게 되면서 그녀도 서서히 농사꾼의 아내로서 수업을 받고 있다.
“5만평 논농사로 조수입은 연간 9천만 원 정도. 그마저도 농자재값, 농기계 대출 받은 것 등을 제하면 절반 정도가 순수입이에요. 여기저기 보이지 않게 나가는 돈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1~2년만 빚 갚으면 지금보다 나아지겠죠.”

차근차근 농사꾼 수업 중
대농의 며느리로서 이공주 씨는 굴러온 복덩어리다. 국가대표 운동선수 출신인 그녀가 양양군에 오면서 도민체전이나 군, 면 체육행사에서 월등한 기량으로 지역을 빛내니 시아버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바로 전 양양군수는 그녀의 두 아이 이름까지 알 정도였다니 나름 유명인사 축에 속하는 듯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농사경력도 일천한 그녀에게 경영까지 맡기기에는 아직 미더운지 시어머니는 곡간 열쇠를 놓지 않고 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농사일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데, 벌써 돈 관리를 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께서 여성후계농업인으로 선정되고 트랙터도 직접 몰고 다니실 정도인데…. 저는 아직 멀었어요. 시부모님께서 연로하시니 차츰 제가 농사일에 참여하는 것도 늘어나겠죠. 그때까지 부지런히 배워야겠죠.”
아테네올림픽에서 딴 은메달이 어디 있냐는 물음에 그녀는 “방에 걸어놨어요”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 메달을 보며 앞으로 많이 남은 농촌생활에 큰 에너지를 얻을 듯하다.
농사꾼 남편과 결혼한 것에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녀. 시부모님이 물려주신 농사기반을 잘 이어가고, 시부모 공경 잘 하면서 두 애들도 잘 키우겠다는 그녀에게 농촌은 제2의 ‘우생순’ 신화가 펼쳐지는 축복의 땅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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