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③충북 음성군·읍 용산리 ‘향기로운 포도원’ 유수경 씨

▲ 유수경(사진 오른쪽) 씨가 어머니와 함께 새로 심은 포도나무 가지 유인작업을 하고 있다.

도시 직장생활 접고 모친과 5년째 포도농사
예술이 접목된 농촌체험 프로그램 운영

“농촌에서 자란 때문인지 도시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고향의 흙냄새가 그리워 1년을 못 버티고 다시 평택으로 내려와 통학했어요.”
어려서 언니와 흙과 들판의 이름 모를 잡초를 반찬 삼아, 그리고 풀벌레를 장난감 삼아 소꿉놀이 하던 소녀가 지금은 어머니를 도와 포도농사를 지으며, 4-H 임원을 지내고 농촌교육농장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농업에 대한 꿈과 소중함을 전파하는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충북 음성의 ‘향기로운 포도원’ 유수경 (29) 씨가 그 주인공. 애기 울음소리 듣기 힘들다는 농촌에서 만삭의 몸으로 흙을 지키고 있는 유 씨의 농촌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향수병에 농촌으로 돌아오다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컨벤션경영학과에 다니던 유수경 씨는 부모의 포도농사 영향을 받아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포도 생산만으로는 소득에 한계가 있고, 이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와인이 앞으로 더 전망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소믈리에 컨설턴트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국와인소믈리에학회가 운영하는 와인·소믈리에 교육과정도 수료했다. 이는 그녀의 대학과정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공부할 때도, 직장에 다닐 때도 고향의 흙과 알알이 열린 포도가 눈에 아른거렸다. 졸업 후 국제기획전문회사에 1년간 다닌 그녀는 전공을 살려 그 방향으로 계속 나갈 것이라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2009년 졸업과 함께 어머니의 농사일에 동참하기 위해 음성으로 내려왔다. 2006년 경기도 평택에서 음성으로 터전을 옮겨 포도나무를 심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이후 그녀는 체계적으로 농사기술을 익히기 위해 농업기술센터의 친환경 유기농업과정을, 2011년에는 농촌진흥청의 로컬푸드 활성화 산지처리·가공기술교육을 수료했다.
영농 5년차인 그녀는 어머니 이복수(56) 씨와 함께 14,850㎡(4,500평)의 비가림 포도농장에서 델라웨어, 힘로드씨드리스, 흑진주, 경조정, 홍서보, 거봉 등 다양한 포도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수확기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8월초부터 9월초까지 소득이 발생하는 장점도 있다.
‘향기로운 포도원’의 지난해 매출은 1억2천만 원 정도. 이중 직거래로 90% 정도를, 나머지는 지역농협에 판매한다.

4-H 활동으로 농촌 소중함 알아
“어머니도 20대 때 평택에서 4-H 활동을 했어요. 워낙 활달하신 성격에 예술적 소질도 있던 어머니는 4-H 활동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죠.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경진대회에서 우수회원에 뽑혀 ‘4-H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네요.”
그런 어머니의 권유로 2011년 음성군4-H연합회에 가입했는데, 지역에 여성회원이 없다보니 바로 여부회장에 임명됐다. 4-H 임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그녀는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전문여성농업인 육성을 위한 비즈니스리더십계발연수도 이수했다.
쾌속 승진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이듬해 후계농업경영인에 선정됐고, 그해 충북 영농4-H연합회 여부회장에도 올랐다. 현재는 한국포도회 이사인 어머니와 함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지난해 농촌교육농장으로 선정된 ‘향기로운 포도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받기 위해 교육장 내부 단장에 한창인 유수경 씨.
농사에 문화를 입히다
그녀는 어머니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장까지 지낸 어머니는 농장을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수필가이고, 유수경 씨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림과 교육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고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
지난해는 농촌진흥청이 추진하는 농촌교육농장에 선정돼 학교교육과 연계된 교육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나름 마케팅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유수경 씨는 농산물에 문학을 입혀 고객들이 잊지 못할 추억까지 선물하고 있다.
“와인체험 고객들에게 ‘꿈편지’를 쓰게 하고, 1년 뒤 와인이 숙성될 즈음, 그들이 쓴 편지와 와인을 함께 보내주는데 당시를 추억하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음성지역이 인삼과 복숭아, 수박, 고추로 유명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음성의 우리 농장을 각인하는 효과도 있고요.”

농업기술센터 직원이나 주위 농가로부터 억척 농부로 소문난 유수경 씨는 농사기술 외에도 소형굴삭기, 승용예초기도 직접 운전한다. 집안에 남자가 없으니 그나마 가장 젊은 그녀가 이를 대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농기계는 부릴 줄 알지만 자격증은 아직 못 땄어요. 임신 중이라 잠시 미뤄놨죠. 흙냄새 맡고 공기 좋은 곳에서 생활하니 태교에도 좋을 것이고, 출산 후에 육아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오히려 곁에서 애기랑 같이 있으면 더 좋지 않겠어요?”
유수경 씨에게 농촌은 꿈과 희망이 그려지는 무한의 도화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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