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술지원팀 지도관

▲ 김은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술지원팀 지도관

외갓집의 마당과 담 밑에
피고 지던 작은 꽃들…
외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그곳은 집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 복잡하지 않고 밀리지도 않는 한적한 국도변에 있다. 집 뒤편엔 야트막한 야산이 에워싸고 있고, 집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마당 한쪽에 넓은 장돌을 쌓아 만든 장독대 사이사이에 키 작은 맨드라미, 채송화들이 아기자기하다. 담은 없었거나 아니면 생 울타리나 돌로 낮게 쌓았을 것이다. 빨래줄에 걸린 흰 빨래들이 바람에 나비처럼 춤을 추는 듯 보였으니까.
가족끼리 마음먹고 나들이할 때, 아니면 부담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와 이곳을 찾고 싶다. 텃밭 김을 매다 이마에 흐른 땀을 머릿수건으로 닦으며 농부의 아내는 우리를 맞을 것이고, 특별하게 부산을 떨지 않았음에도 맛깔스런 점심을 내올 것이다. 텃밭에서 금방 따 온 채소와 강된장찌개, 몇 가지 짭쪼롬한 장아찌 반찬만으로도 우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아마 반 그릇 정도는 더 달라지 않을까 싶다. 후식으로 누룽지에 숭늉을 먹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갱엿, 콩강정, 뻥튀기, 볶은 콩, 고구마, 옥수수, 다식, 산자, 개떡 등 오래전 유년시절에 외갓집에서 먹어봤던 간식거리들을 그곳에서 먹었으면 좋겠다. 집 주인은 상 차려내고 우리 시중들라 바쁘겠지만 오가면서 눈이라도 맞춰주고 잠깐은 짬을 내어 우리들과 사는 얘기, 농사짓는 얘기, 음식 얘기들을 나눴으면 좋겠지만 꼭 바라지는 않는다. 맛있는 식사와 재미있는 수다, 이 집만의 냄새와 향기…. 떠날 때도 우린 그냥 오진 않을 것이다. 함께 가지 못한 식구와 이웃을 위해 맛있게 먹었던 반찬 중 들고 가기 편한 장아찌, 고추장, 된장 등 밑반찬들과 텃밭의 채소들을 조금씩은 손에 들고 올 것 같다. 농가의 부인은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며 식사대를 받을 때, 미안해하고 겸연쩍어 하며 받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린 알 것 같다. 우리도 값을 쳐줄 수 없는 것에 돈을 내는 것이 괜히 미안하니까.
그런 그 집의 모습, 내가 그리는 ‘농가의 맛집’이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과 질박하고 꾸밈없는 농가의 음식 맛, 욕심을 더 낸다면 유년의 추억까지 지금 이 시대 상품화돼 가고 있는 농촌의 외식공간인 ‘농가맛집’에서나마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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