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은퇴를 앞두고 필리핀 대학교에서 한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학생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 중에 ‘한국 사람들은 왜 자꾸 ‘빨리빨리’ 서둘기만 하는가?’ 식사도 10분이면 해결하고 ‘무슨 일을 그렇게 급히 해결하려 하는가?’라는 식의 질문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답변이 궁해진다. 그때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빨리 문화’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곤 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계절을 놓치면 농사를 망치고 길고 긴 겨울을 살아남을 수 없다. 봄부터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여 3~4개월의 긴 겨울식량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래서 식량증산을 외치던 시절엔 ‘한시영농’이란 용어까지 생겨났다. 겨울 난방을 해결하기위해서 땔감을 준비해야 하고 해마다 김장김치를 해서 땅속 깊이 묻어 놓고 겨울을 나야 했다. 열악한 자연환경은 살아남기 위해 근면, 검소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동남아 등 열대기후조건에서는 4계절이 아닌 건기와 우기로 계절을 나눈다. 그들은 4계절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처럼 미리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부족하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지금 전국이 온통 김장 김치 담그기가 한창이다.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김치담그기 봉사활동은 흐뭇한 모습들이다.
초겨울 하늘에서 내려다 본 한국의 들판에는 하얀 공룡 알이 장관을 이룬다. 가축들의 겨울김치겪인 생 볏짚을 이용한 ‘곤포사일리지’ 더미를 비유한 말이다. 올해 벼 재배면적이 줄다 보니 생 볏짚 가격이 크게 올라 축산 농가들이 조사료확보에 시름이 깊다. 가축조사료원의 50%를 충당하는 볏짚을 논에서 가져가는데 지력증진을 위해 해마다 그만큼 논으로 되돌려 주는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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