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195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지금의 50대 중후반~60대들에게 어렸을 적 추억이란 온통 못 먹고 못 입고 살았던 가난과 결핍에의 기억 뿐일 것이다. 참혹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해 가던 그때의 헐벗고 굶주렸던 기억들은 추억이라기엔 너무도 쓰라린 시대의 상처로 남아 가슴 저 밑바닥에 문신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오리 남짓한 학교까지의 거리를 ‘책보따리’ 어깨에 질끈 동여매고 논길 밭길 산길을 따라 재잘거리며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녔던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가난하고 구접스러운 집보다는 학교가 좋았다. 학교에서는 때때마다 인근 미군부대에서 지원해 주는 미제(美製) 공책과 연필이 지급됐고, 점심시간에는 구수한 샛노란 옥수수 강냉이죽과 양재기에 끓여 굳힌 탈지분유가 급식으로 나왔다. 물론 급식 대상자인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것이었지만, 아이들 누구나가 그 황홀한(?) 별난 맛에 혹해 너도나도 급식당번을 자청했다.
만국기가 학교운동장 하늘 가득 희망처럼 펄럭이던 가을운동회 때 입었던 흰 세로줄이 있는 검은색 광목 팬티는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외출복이 되었다. 비가 올 때면 학교길은 각양각색의 아이들 모습으로 장관을 이뤘다. 형편이 그런대로 푼푼한 집 아이들은 검정장화에 비닐로 된 비옷을 입거나 대나무살에 누런 기름종이를 바른 지(紙)우산을 쓰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투박한 비닐로 된 투명한 정부미 포대나 비료포대를 기역자로 터 머리에 뒤집어 쓰고는 볏짚으로 꼰 새끼줄을 허리띠 삼아 매고 맨발로 빗속을 내달렸다. 특히 정부미 포대 한면에는 미국의 성조기 모양을 딴 별무늬와 악수를 하고 있는 손 모양이 그래픽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이름해서 전후(戰後)에 ‘미공법480호’에 의해 미국이 보내온 원조양곡 포대였던 것이다. 그것이 불과 50년 전후의 일이다.
그런 가난과 전쟁고아와 입양아로 얘기되던 ‘어제’의 한국이 외교·문화·교육·스포츠 등의 매력을 통해 상대방의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능력을 말하는 ‘소프트 파워(soft-power)’ 국가별 순위에서 11위에 올랐다. 매년 세계에서 살기좋은 도시 순위를 발표하는 영국의 유명 트렌드 잡지 ‘모노클(Monocle)’이 지난 19일 조사 발표한 결과다. 1위는 영국으로 올림픽·대중음악 콘텐츠이미지로, 2위는 리더십·기후변화대응 콘텐츠로 미국이 차지했다. 일본은 장인정신과 패션이라는 국가이미지로 6위에 올랐고, 우리나라는 뛰어난 기술력과 K팝이 국가의 매력적인 이미지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 대중문화시장을 석권한 ‘세계적 수출품’으로 평가받았다 하니, ‘말춤’의 덕을 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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